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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북쪽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ㅣ 대한민국 도슨트 9
현택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이렇게 기특한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줄 몰랐다. <제주 북쪽>은 벌써 9번째 시리즈인데 그동안 속초, 인천, 목포, 춘천, 신안, 통영, 군산, 제주 동쪽이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로 이미 출간된 상태이다. 매일매일 인터넷 서점을 드나드는데도 이런 시리즈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니 역시 출판계도 마케팅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지 씁쓸해진다.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 알고도 모른체 하기는 어려운 법. 욕심난다.
인터넷에서 제주 여행에 관해 검색한다면 어떤 장소들이 나올 지 대충 짐작이 된다. 최근에 방송을 탔던 곳을 중심으로 요즘 트렌드를 반영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장소들 그리고 예쁜 카페나 맛집들이 줄줄이 나올 게 뻔하다. 내가 이런 곳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도 어디 여행 가면 맛집도 찾아보고 예쁜 카페도 검색해 본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그런 곳에서 찾을 수 없다.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 그 땅이 목격한 역사의 진실, 그 땅에서 살았던,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 책이나 기타 다른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못배길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러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여행서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 북쪽>은 제목 그대로 제주의 북쪽인 제주시, 구좌읍, 애월읍, 조천읍, 한림읍에 얽힌 역사와 사람 그리고 땅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은 제주시보다 서귀포시 쪽이 여행지로는 더 인기가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용두암이나 만장굴 같은 추억의 이름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몰랐는데 제주 북쪽은 제주 시조의 탄생 설화를 품은 곳이라고 한다. 탄생 설화에서부터 낯선 이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제주 사람들의 마음은 탐라국으로 해양 무역을 주도했던 시기를 거쳐 조선시대 최악의 유배지로 악명 높았던 시대까지도 고스란히 간직된 듯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제주 하면 절대 빼놓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4.3 사건 이후로 낯선 이방인들에게 다른 태도를 갖게 되지 않았나 저자는 조심스레 언급한다. 국가와 외세가 합심하여 자국의 국민들에게 조직적 폭력을 자행한 부끄러운 역사인 제주 4.3 사건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심각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제주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 때 잃어버린 수십여 마을들 중 많은 곳들이 복구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그나마 제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면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제주 북쪽을 이야기할 때 4.3 사건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책에는 그 이외에도 제주 북쪽 땅이 품은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특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여러 오름들과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지역들, 한 자리에서 제주의 희노애락을 묵묵히 보아 온 오래된 장소들까지 포함하고 있어 저자를 따라 한발한발 걷다 보면 그래..이런게 여행이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자의 말투는 과장되지 않으면서 진솔하다. 제주의 사투리와 이름들이 생소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설명과 감탄을 자아내는 사진들이 어색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의 오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라고 출간 의도를 밝힌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가 대한민국의 국토를 모두 포함할 때까지 장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