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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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일컬어지는 1998년작이다.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스토리 자체가 영화화 하기에 딱 좋다. 한발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걸쳐놓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감정을 중심에 놓고 써내려간 작품이다. 여기서도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는 여지없이 발휘된다. 그것도 오지랖 넓게.


   평범한 40대 가장인 헤이스케의 일상에 남의 일만 같던 사건이 일어난다. 아내인 나오코와 초등5학년인 모나미가 나오코의 친정으로 가는 길에 탔던 버스가 기사의 과실로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아내 나오코는 사망하고 딸 모나미는 의식이 없는 상태. 그러다 기적적으로 모나미의 의식이 돌아오는데 세상에, 몸은 모나미인데 그 안에 들어있는 의식은 나오코이다.


   지금은 워낙에 이런 공상과학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으나 사실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껍데기만 빌렸을 뿐 실제 이야기는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감정의 경계선이 도전을 받았을 때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거기에 옳고 그름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신이 개입되어 있는냐. 그것도 아니다. 즉, 신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 이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좋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운전 기사의 과로에 의한 과실이지만 직원의 과로를 방치한 회사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를 생각한다. 이 부분은 사실 약간의 오지랖처럼 생각되지만 나비의 날개짓 하나가 태풍을 불러오는 것처럼 인간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같은 사고로 쌍둥이 딸을 잃고 그 보상금으로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살려낸 한 아버지는 죽은 딸들보다 보상금에 더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슬픔을 꾹꾹 눌러담을 수 있음을 당사자 말고는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아내와 딸이 있는데도 전 부인과 아들에게 몰래 송금을 하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떤 감정으로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일까. 딸의 몸 속에 들어간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내의 젊은 육체를 질투하고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감정을 그 누가 이해하거나 다독여 줄 수 있을까. 경계선 주변을 넘나드는 인간의 감정에 정답은 없다. 그저 각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결말에 생각지 못한 반전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라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작가는 결국 끝까지 신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연이나 기적은 한번으로 충분하며 그 나머지는 인간의 몫임을 전달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선택한 이들의 비밀은 쉿! 헤이스케의 울음에 같이 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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