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세계 - 80가지 식물에 담긴 사람과 자연 이야기
조너선 드로리 지음, 루실 클레르 그림,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그동안 식물이나 나무의 세계를 다룬 책들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요녀석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본적으로 식물은 위험하면서 영리한 존재다. 땅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움직이는 이들을 조정하여 번식을 하고 자손을 퍼뜨릴 뿐더러 자신을 먹이 삼으려는 동물이나 곤충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자기방어기제를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 겉모습이 화려할수록 수법도 대담하고 강렬하다.


   조너선 드로리의 <식물의 세계>는 이런 영리한 식물들을 무려 80 종류나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나처럼 식물의 실물을 많이 보지 못한 무지한 이들을 위해 엄청나게 세밀한 그림들이 실려있다. 어찌나 그림들이 섬세하면서 아름다운지 이 책을 들고다니는 것만으로도 우쭐해지는 기분이다. 역시 나는 예쁜 책들에 약하다. 아, 그런데 이 책은 그냥 예쁘기만 한 책이 아니다. 각 식물에 대해 백과사전에 버금가는 지식을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유머와 사피엔스에게 한방 제대로 날리는 주먹까지 겸비했다. 진짜 이건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어설프게 인용해 봐야 썰렁할 뿐이리라.

그럼 이 80가지 식물은 어떻게 선정했을까.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식물의 과학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인간의 역사, 문화와 얽히면 배로 흥미진진해진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은 식물 못지않게 인간의 면면을 드러낸다...(중략)

나는 런던의 우리 집에서 출발해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경로를 대략적으로나마 따르려고 했다. (들어가며 p11)

   그러니까,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식물들,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식물들을 선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식물의 나열 순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여행한 경로를 따르겠다고 한다. 정말이지 나는 벌써 여기서부터 저자에게 홀리고 말았다. 이런 센스를 지닌 사람이 쓴 책이라니, 난 이미 저자의 전작인 <나무의 세계>도 장바구니에 넣고 본격적인 식물의 세계로 들어갔다.


   자연의 산물인 식물들은, 또 다른 자연의 산물인 곤충들, 새들, 다양한 동물들과 적절한 선에서 공존하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호모 사피엔스 역시 자연의 산물임에도 우리는 마치 자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식물로부터 많은 것들을 신세지고 있으면서도 열 개를 가져오면 단 하나도 돌려주려는 생각이 없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곤충들도 식물로부터 꿀을 얻는 대신 (물론 어느 정도는 반강제적으로) 꽃가루를 퍼뜨리거나 열매를 옮겨주는데 나도 인간이지만 참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움은 덤이니 일단 다른 건 생각하지말고 식물 따라 세계일주 할 기회를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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