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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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가 이렇게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문학을 좋아하는 독자 뿐 아니라 유령, 뱀파이어, 좀비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몰입도를 보장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드라큘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백작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생명체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존재를 나타내는 보통 명사는 흡혈귀이지만 어느 새 흡혈귀라는 말 대신 드라큘라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한다는 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출간 1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조솁 셰리든 르 파뉴의 <카르밀라>가 죽지 않는 흡혈 존재들을 다룬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알고 있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르 파뉴가 브램 스토커의 대학 선배라고 나와 있다. 르 파뉴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브램 스토커는 완전히 독자적이고 후세에 길이 남을만한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120여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치밀한 구성을 지닌 작품이다.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들의 일기나 편지같은 기록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뭔가 결정적인 소식이나 단서가 나올만 하면 다른 사람의 편지나 일기 혹은 사건으로 넘어가버리면서 독자들의 약을 올린다. 그래서 중간에 어쩔 수 없이 책 읽기를 멈춰야 했을 때는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드라큘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밤에 활동하고 해가 뜨면 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십자가 같은 기독교적 성물이나 마늘을 싫어하고 드라큘라에게 흡혈을 당한 존재 역시 흡혈이 된다는 것 정도였는데, 책을 읽으니 드라큘라 백작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음에 놀랐다. 원래 흡혈귀는 발칸 지역 슬라브 사람들의 민간 신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드라큘라 백작의 성이 있는 곳도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로 설정되어 있다. 드라큘라 백작이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관 속에 흙을 담아 새로운 은신처들로 옮겨야만 했던 이유, 수백년을 죽지 않은 존재로 살면서 얻은 것과 얻을 수 없었던 것들에 관한 부분, 새로운 장소에는 초대받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 점 등이 특히 흥미로웠고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혹은 생각)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나 드라큘라 백작의 타깃이 되는 희생자들을 주로 여자들로 설정한 이유 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들은 이 작품이 그저 재미를 위한 작품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특히 드라큘라 백작이나 다른 흡혈귀들을 기독교적 성물을 이용해 꼼짝 못하게 하는 부분은 슬라브족의 토속신앙을 기독교신앙이 완전히 장악해버린 역사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 속에 숨겨진 이면의 무언가를 논하기 전에 <드라큘라>는 작품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 흡혈귀라는 오싹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다. 이야기도 굉장하지만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마지막 클라이막스까지 끌고 가는 구성의 힘이 대단하다. 조너선 하커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현대성(그러니까 과학같은?)만으로 소멸시킬 수 없는 구시대의 힘을 확실하게 체험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허밍버드의 클래식M 시리즈가 이 작품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니 여러모로 아쉽다. 원래 기획의도가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으로 각색된 고전문학들을 소개하는 것이었으니 나는 역으로 <드라큘라>를 책으로 읽었으니 이제 뮤지컬로도 한번 접해볼까 생각 중이다. 책 뒷부분의 브램 스토커 연보를 읽다보니 생각보다 다작을 한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검색해 봐도 <드라큘라> 이외의 작품들은 번역된 적이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드라큘라>가 너무 유명해서인지 아님 다른 작품들이 인기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쉽다. 이 정도 필력이면 다른 작품들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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