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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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라는 것도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있어서 나름대로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런 걸 뛰어넘어서이겠지. 특히 SF나 추리, 미스터리 같은 장르문학은 시대가 지날수록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 혹은 상상력의 진화나 더욱 자극적인 내용을 바라는 독자들의 심리 같은 것들이 합쳐져 옛날 작품들은 고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 역시 1938년도 작품인데다 추리,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분류되어 있어 약간의 걱정을 안고 읽었으나 이 작품은 추리나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성에 집중한 이야기라 80여년 전 작품임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함께)


   사실 이야기에 압도적인 서스펜스나 사건을 추적하는 긴장감 있는 스토리 따위는 없다. 그저 한결같이 브라이턴에 터를 둔 한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진짜 우두머리의 죽음으로 얼떨결에 우두머리가 된 듯한 느낌의) 열 일곱살 소년, 핑키의 죄의식 없는 악한 본성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누와르에서 만나는 그런 갱단의 두목을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이야기 속에서 내내 악의 상징으로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별로 없고 외모도 왜소한 이 소년이 어떻게 해서 갱단의 두목이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그런 요소가 중요한 사항이 아닌 듯 하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 한건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본성을 가진 소년과 (아 물론 로즈에게는 살인 전 단계에 결혼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소년에게 맹목적인 충성과 헌신을 하는 로즈라는 열여섯 소녀가 보여주는 악과 선에 관한 개념이 흥미롭다. 거기에 대항하여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라는 신념으로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하는 아이다 아널드의 행동은 핑키와 로즈의 세상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으면서 평행하게 내달린다.


   아이다는 자신이 로즈를 구했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그러지 않았음을 안다. 한 인간의 본성이 다른 인간에 의해 바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로즈가 핑키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비로소 스스로 깨달음을 얻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자신이 헌신해야 할 핑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끝내지 않은 결말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이 80여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매력도 없고 세상의 기준에 비하면 하찮은 인물이 스스로 지옥불로 떨어지겠다며 대놓고 추구하는 악의 모습과 착하기는 하지만 이 악에게만큼은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는 선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인 '브라이턴 록'은 막대 사탕이다. 깨물어 먹어도 끝까지 표면에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사탕이라고 한다(구글 이미지 찾아보면 나옴). 작가는 아이다의 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이 브라이턴 록이라는 사탕처럼 변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사람은 변한다'라고 말하는 로즈가 절대 변하지 않는 캐릭터 중 하나로 그려진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아마도 나중에 핑키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한 표 걸겠다 .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성이 주는 공포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으로 결론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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