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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재생 이야기
김정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94년도에 런던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여기저기 탐험할 기회가 있었다. 지방 도시 출신인 나는 94년도까지 서울에 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런던에 가서 우리나라와의 비교 대상은 내가 살던 지방도시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의 수도에서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충격받았던 몇가지가 있었다. 우선, 홈리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홈리스'라는 용어도 거기 가서야 알게 되었는데 도시 곳곳의 지하도 같은 곳에는 어김없이 홈리스들이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해도 대도시의 빈민의 문제가 지방도시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두번째로 놀랐던 건 지하철이었다. 1800년도에 최초로 생긴 지하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지하철 바닥이 나무이고 넓이가 굉장히 좁아서 양쪽 의자를 제외하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한데 출퇴근 시간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인데다 더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툭하면 고장이 났는데 역 앞에 고장이라고 써붙여 놓으면 그만이었다. 그걸 또 그대로 받아들이고 별 불평없이 되돌아가는 시민들도 대단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충격이었던 건 도시의 빈민가 지역이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거였다.
그 뒤로 98년인가 스코틀랜드에 가면서 런던을 경유해서 가고 2000년대 후반에도 한번 갔었는데 역시나 여행자의 눈으로 봐서는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2011년인가 런던을 다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세상에...런던이 달라졌다! 그것도 엄청나게! 특히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유럽인들의 속성을 고려해 볼 때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그저 달라졌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모든 것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 의 일환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저 외지인의 입장에서 달라진 런던의 외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시학자가 읽어내는 런던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의미와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문제들이 있었길래 도시 재생을 결정했는지,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재생 방향을 결정해야 했는지, 도시 재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배운 교훈은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촘촘하게 설명한다.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던 영국은 찰스 디킨스 등의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 혁명이 한창 진행될 당시에도 도시의 빈민들의 상황이 심각한 상태였다. 단순 1차 산업이 쇠퇴한 후 템즈강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각종 산업시설들이 문을 닫고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 범죄의 온상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버려진 산업 유산들이 어떻게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로 바뀌었는지, 도시의 온갖 정책에서 소외되었던 동네가 어떻게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곳으로 변화했는지 짚어준다. 변화의 근간이 되는 변하지 않는 원칙은 '공공공간', '보행중심' 그리고 '시민'이라는 것이 놀랍다. 그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변화는 결국 실패했다는 점은 도시 재생이라는 것이 그저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벽에 그림 좀 그리고 기차역이나 터미널만을 새로 짓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 재생을 주도하는 이들의 개념있는 마음가짐과 재생이 진행되는 동안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시민의식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이 바로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도 소개된 '밀레니엄 브리지' 사진을 첨부해본다. 역시 이 책에서 소개된 테이트 모던에서 바라본 밀레니엄 브리지와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미술관을 만든 좋은 아이디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이면에 있는 도시 재생의 의미를 알고 나니 감동이 더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