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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평점 :
어? 알폰스 무하 책이 나왔네? 하면서 저자가 누구인지 봤더니, 내가 가지고 있는 2012년에 출간된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이라는 책의 저자와 같은 분이었다. 개정판인가 싶어 책 소개를 읽어봤지만 개정판이라는 말이 없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이미 절판이고 그 책의 개정판도 한번 나왔었지만 품절이었다) 무하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담았을 것 같아 읽어보고 싶었다. 읽고 보니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고 일부 구성과 내용에 약간의 변형만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10여년만에 접한 무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의 아르누보양식의 일러스트들은 마치 어릴 때 순정만화를 보고 느꼈던 경외감을 떠올리게 만든다. 체코의 시골마을인 이반치체에서 태어난 무하가 세기 말 파리가 사랑하는 화가로 명성을 누리고 파리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그가 그린 일러트스와 삽화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 사랑을 받기까지의 여정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게다가 무하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들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10여년 전에는 무하의 여러 행적 중 그가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까지의 과정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고민했던 슬라브 민족의 미래와 독립 그리고 화합에 관한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무하의 자신의 민족에 대한 꿈은 단순한 향수병에서 나온 즉흥적 생각이 아니었다. 범게르만정책으로 인해 슬라브 민족의 전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그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후 시작된 그의 필생의 작업인 <슬라브 서사시>는 완성하는데 약 20여년이 걸린다. 그의 작품을 본 슬라브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문화가 나서고 문화가 기억해야 한다는 한수산 작가님의 말도 되새겼다. 무하 역시 그렇게 믿었고 문화와 예술이 과거를 살아있는 오늘로 되돌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모든 국민의 발전이 성공리에 끝나는 것은 그것이 국민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유기적으로 계속 성장했을 때 뿐이다. 또 이 계속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과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된다.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한 후 무하의 말. 본문에서 발췌 p262-263
이제는 무하를 아르누보 양식을 유행시킨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그렸던 화가 혹은 장식미술가로만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의 조국인 체코와 슬라브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보냈던 거장이었음을 기억해두자. 거기에 더해 무하의 평생의 꿈이었던 <슬라브 서사시>에 대한 계획을 듣고 슬라브인이 아님에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의 대부호 크레인도 생각해 본다.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의 딸이 슬라브의 여신 '슬라비아'로 그림 속에 영원히 남게 되는 영예로 보상받는다. 게다가 이 디자인은 이후 체코 은행의 포스터와 지폐에도 사용되기까지 했으니 체코인들의 기억 속에 단단히 각인된 셈이다. '무하 스타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던 무하의 예술 세계가 궁금하신 독자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