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처럼 이 책 역시 다른 이의 베스트 목록에 있는 걸 훔쳐 온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제목의 소설집이지만 궁금했다. 작가의 블로그가 있다 하여 책을 읽기 전 탐색해 보았다. 이런..블로그에는 작가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작가는 여덟편의 소설을 내고도 여전히 아파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아픔이 옮아올까 아주 잠깐 움찔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이 나를 독려했다. 어디 '아름다운 소설'이라는게 이 세상에 존재하던가.


   그녀의 처음 두 이야기인 <잘못한 사람들>과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을 읽고서는 생각해 보았다. 이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잘못한 사람들>이야 우연과 인위가 어느 정도 개입했다고 해도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제법 흔한 소재이다. 이 이야기를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가르는데 급급할 것이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그 어느 누구도 세호의 아버지가 강요하던 '잘못했다'라는 말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며 폭력적 가장의 죽음에서 아무도 미주가 생각하는 '완벽한 이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감정 없는 메마름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 하지만 슬픔이나 절망을 머금은 자들의 뒤에 독자만이 볼 수 있는 '반짝이는 별들'과 '웅크리고 있는 희망'을 놓아두었다. (미주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의 진희를 생각나게 한다)


   이어지는 <그믐밤 세 남자>와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엄 대리>, <개들이 짖는 동안>에서 그 반짝이는 별과 웅크리고 있는 희망을 보았다. 심지어 유머라고는 없을 것 같은 작가가 인심쓰고 한두방울 정도 떨어뜨려 놓은 듯한 표현들 앞에서 웃기까지 했다.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과 <숨어 살기 좋은 집>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전혀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깨끗이 잘라내는 모습은 낯설지만 인상적이다. 여자는 피자를 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여자의 실종보다 남편의 울음을 더 슬퍼하는 '나'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인생이 계속될 수 있는 건 걸으면서 생기는 끊임없는 상처를 덮어가면서 걷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상처가 치료되든 곪아서 터져버리든 그것은 우연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내 인생이 '아름다운 소설'이 아닐지라도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작가도 '아름다운 소설'이 아닐지라도 독자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이야기를 쓰던 그건 작가의 맘이고 어떤 이야기를 읽던 그건 독자의 맘이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건 순전히 우연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으로 나는 또 한명의 주목해야 할 작가를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