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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나에게 한국 소설은 약 10여년 전의 김애란 작가에게서 멈춰있다. 그러니까 그 이후로 한국소설을 안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김애란 작가 이후 등단한 새로운 작가들의 소설은 내 시야에서 외면당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물며 SF에서 한국작가라니! SF를 꽤나 좋아하는 나에게 한국작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지독한 편견이 아닐 수 없지만 암튼 그랬다. 그러다 블로그 이웃분이 한해의 베스트3으로 문목하 작가의 이 작품을 꼽았더랬다. 누가 추천하는 건 또 솔깃한데다 장르도 SF, 심지어 출판사도 아작이었으니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난 소감은? 와~ 굉장한 작가를 그동안 몰라봤다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천재작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녀의 두번째 장편인 <유령해마>도 이미 2019년에 나왔던데 바로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우선 SF임에도 '우주'를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어설픈 우주 흉내내기로 망작이 된 작품들을 많이 봤기에.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발견된 정체 모를 물질을 잘못 다룬 인간의 실수가 가져온 인재로 인해 한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린 싱크홀과, 그 도시와 도시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 싱크홀의 알 수 없는 깊이만큼의 절망을 주었으면서도 그들의 살고자 하는 절박한 희망의 마지막까지 뭉개버리려 하는 기득권자들의 악랄한 본성을 먹이 삼아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정지자, 파쇄자, 복원자라는 기가막힌 능력을 부여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드러나는 겹겹의 반전은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만든다. 거기다 또 대사 하나하나, 묘사 하나하나는 어찌나 캐릭터들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지 마치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면서 눈앞에 윤서리를 그려내고 서형우를 만들어내며 정여준을 데려다 놓은 것 같은 시각적 환시까지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주절주절 쏟아내어 다른 분들의 읽을 권리를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 다들 꼭 읽어보시길.
이 정도의 클라스가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라니 이제 그녀의 작품만 기다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듯 하다. 앞으로 그 분의 베스트3은 꼭 챙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