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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지구를 누빈 식물의 놀라운 모험담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개척자, 전투원, 도망자, 항해자, 시간여행자, 생존자, 시대착오자.
위의 모든 호칭들에 부합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시간여행자만 아니라면 인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정답은 바로 '식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집에서 기르는 식물을 '반려식물'이라 부르며 살아있는 존재로 대우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위가 동물이 누리는 위치에는 오르지 못한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인간의 관점 혹은 동물의 관점에서 식물이라는 유기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파장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의 영역은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의 수명은 고작해야 백년인데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동물적 관점에서 벗어나 식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해저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아무도 살지 않는 신생 화산섬에 어떻게 나무가 자라게 되었을까.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지역에서 식물은 어떻게 스스로를 희생하여 땅을 정화하게 되었을까. 코로나19로 사람의 활동이 제한되었을 때 자연이 되살아난 것처럼 현재 체르노빌 통제구역은 강제로 자연보호구역이 된 셈이다. 이민자(외래종)가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자생식물로 신분세탁을 한 식물이 있는가 하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씨앗을 보존하여 종족 보존에 앞장서는 식물들도 있다. 2천년을 땅 속에 묻혀있으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아하는 씨앗도 있고 가장 척박한 땅에서도 땅속 깊이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린 채 홀로 외롭게 숨쉬는 나무도 있다. 반면 공생 파트너를 잘못 골라 파트너의 멸종으로 덩달아 멸종 위기에 처한 시대착오자들도 있다. 저자는 식물이 하나의 생명 유기체로 존중받아 마땅함을 식물들의 모험담을 통해 피력한다.
인간의 활동이 환경과 다른 유기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상에 사는 다른 종들을 존중하는 법을 인간은 좀 더 배워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은 식물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