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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맛보다, 와인 치즈 빵
이수정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0년 11월
평점 :
와인. 치즈. 빵. 생각만해도 기분좋은 조합이다. 여행으로든 일로든 유럽을 갈 때마다 내 머릿 속에는 햇살 따스한 날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화이트 한잔을 앞에 놓고 책을 읽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2유로 정도로 거뜬히 괜찮은 데일리 와인을 한병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슈퍼마켓에서 끝없이 늘어서 있는 치즈들을 볼 때마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게 되는 빵냄새를 맡을 때마다 질투가 나곤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와인 치즈 그리고 진짜 맛있는 빵은 손쉽게 구할 수도 있을 뿐더러 유럽보다 가격이 좀 나가기는 하지만 가격 허들도 많이 낮아져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분위기는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일상적 서양 음식으로 자리잡은 와인.치즈.빵 이 세가지를 신화, 역사, 문학작품 속에서 발굴해내어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까지 곁들여 전시해 놓았다. 어려운 용어나 현학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아주 쉽게 써내려간 덕분에 가독성까지 좋다. 우리가 흔히 와인이나 치즈를 먹으면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약간의 지식만 더한다면 제대로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와인을 마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포도 품종을 기억하게 되면 와인 구입에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수많은 치즈를 분류하는 아주 간단한 요령만 알아도 한입 먹고 버리게 되는 치즈를 피할 수 있다.
책 속의 다양한 이야기 중,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한 와인.치즈.빵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주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속의 흰빵 혹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 말고도 성서 속 와인, 오디세이아의 치즈, 길가메시 서사시의 빵, 데카메론의 치즈가 산처럼 쌓이고 와인이 강이 되어 흐르는 세상과 독일 동화 '게으름뱅이의 천국' 속 구운 돼지들과 튀긴 생선들이 명령만 하면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는 세상까지 와인.치즈.빵을 먹고 마실 때마다 생각날 법한 재미있는 구절들이 인용되어 있다. 중간중간 자료 사진이나 그림들이 QR 코드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점은 좀 아쉽다. 책에 바로 실렸더라면 내용을 더 돋보이게 했을 것이다. QR 코드로 확인하게 되어있는 자료들이 대부분 WIKI 등 해외 사이트인데다가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뜨지 않고 방해가 되는 여러 화면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세 가지 중 아무것도 꺼내들지 않고 완독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앞에 준비해 놓고 독서를 시작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