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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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소설 <시녀들>을 아주 인상깊게 읽은터라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라는 <먹을 수 있는 여자>에 관심이 갔다. 보통 첫번째 소설이 미숙한 면이 있더라도 작가의 아이덴티덴티티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프로토페미니즘'에 더 걸맞다고 밝힌 것처럼 이 책이 북구에서 막 여성운동이 일어날 즈음인 1960년대 후반에 발표되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문학인 것처럼 간주되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그 시대의 대다수의 여성의 개인적인 고민과 선택을 그려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고민은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잠깐만 되짚어보면 소설 속 이야기가 그저 먼 나라 캐나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있는 여성이라고 할 지라도 남성과 동일한 경쟁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결혼을 하게 되면 당연히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내조에 힘쓰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주인공 메리언을 보자. 대학을 나와 고만고만한 직장에서 설문질문지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룸메이트와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결혼을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수습변호사 남자친구인 피터의 비위를 맞추면서 연애를 한다. 피터는 예의있고 잘생기고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지만 남성과 결혼하려는 여자를 노상강도 취급을 하는 남자이고 그런 남자를 메리언은 비위를 맞춰가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메리언에게 첫번째 변화는 메리언이 피터와 함께 옛 친구 렌을 만났을 때 일어난다. 이 때 메리언의 일탈적 행동은 피터로 하여금 메리언에게 프로포즈하게 만들고 결혼이라는 행위로 인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평온이 찾아온다.


   여기까지가 1부의 대략적인 내용인데 1부는 메리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2부는 3인칭 시점의 형태로 진행되며(그럼에도 메리언에게만큼은 전지적 시점을 부여한다) 3부는 다시 메리언의 일인칭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아마도 작가는 가장 중요한 일들이 서술되는 2부를 독자로 하여금 메리언의 개인적인 시점을 벗어나 최대한 객관적 관점으로 바라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메리언의 약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이제 결혼을 기다리며 주변 정리하는 일만 남은 메리언에게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기게 된다. 첫번째 일탈이 자기주도적이라면 두번째 일탈은 어느 정도는 수동적인데 현실에 순응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자아와 거기에 반항하려는 자아가 충돌을 일으킨 셈이다.


   소설 제목인 <먹을 수 있는 여자>에 대한 직접적 묘사는 3부가 되어서야 등장하지만 은유적 상징으로서의 <먹을 수 있는 여자>는 사실 소설 곳곳에 뿌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피터 이외에 메리언의 주변에서 더 중요한 역할극을 담당하는 다른 인물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메리언의 변화에 이런 저런 역할을 하는 이들인 셈이다. <시녀들>만큼 인상깊지는 않았지만 '음식에 대한 거부'를 시대에 대한 반항으로 은유한 탁월함에 감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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