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스틸
린지 페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오마주한 이 소설은 주인공 제인 스틸이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여성이 한명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가난한 여성들은 고작 부잣집 자녀의 가정교사가 되어야 했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가정 폭력과 기숙학교의 숨겨진 인권 유린을 스스로 감당하면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한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총33장으로 되어있는데 각 장의 서두에 인용한 <제인 에어>의 문장들과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오마주되는 <제인 에어>의 내용들이 변주된 소설과 너무 찰떡 궁합일 뿐 아니라 '제인 에어'를 자신의 멘토로 삼아 어떤 때는 제인 에어와 같은 결정을, 어떤 때는 제인 에어와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제인 스틸의 스토리가 매력적이다.


   스스로 자서전을 써내려가는 것처럼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다가 중간중간 독자에게 말을 걸면서 독자들을 끝까지 휘어잡는 방식이 소설이 아닌 저자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적인 어두운 인생을 밑바닥에 깔고 유머와 제인 에어로 단단하게 무장한 상태에서 마주한 사랑은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그것만큼이나 위태롭다. 로체스터가 부인이 있음을 고백했어야 하는 것과 제인 스틸이 사실은 자신은 연쇄 살인마라는 걸 고백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작가는 제인 스틸의 이야기를 빌어 영국이 무모하게 벌였던 식민지 전쟁에 관한 비판을 더한다. 유럽 열강 국가들이 너도 나도 대항해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들을 유린하고 착취하며 누가누가 식민지를 많이 갖나 쟁탈전을 벌이던 시기,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펀잡 지방의 시크 교도 지도자들과 손잡고 저지른 만행을 고발한다. 동인도 회사가 영국에게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 주었을 지 모르지만 그 부와 권력의 뒤에 수많은 원주민과 토착민들의 강요된 희생이 전제되어야 했던 부당함을 비난한 것이다.


   이렇듯 소설은 여러가지 다양한 소재를 엮으면서도 어색하거나 엉성하지 않고 탄탄하게 잘 짜여있어 몰입도가 굉장하고 소설이 가져야 할 기본기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기특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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