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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오공훈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평점 :
이 소설은 전쟁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8월부터 1945년 5월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독일의 작은 마을들이다. 브뤼넬에 사는 요한 포르트너는 열일곱살 생일이 지나면 위대한 조국의 부름에 응해 입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시 훈련을 받은 지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전선에 나간 지 둘째 날에 유탄파편이 요한의 왼손을 날려버린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요한은 고향에서 우편배달부로 날마다 일곱마을을 돌며 우편물을 전하고 또 우편물을 수거하는 일을 한다. 배달할 우편물 중 '검은 색 편지'가 없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검은 색 편지'란 전사자를 통보하는 편지를 말하며 일곱 마을의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요한으로서는 '검은 색 편지'를 전달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소설은 우편 배달부로서 일곱 마을을 날마다 돌아다니는 요한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전쟁이 가져온 마을의 변화된 풍경, 가족 중 누군가는 전장에 나가있어 요한이 가져오는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 검은 색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의 반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의 희망과 절망 등이 그 모든 것을 날마다 겪어야 하는 요한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날마다 검은 색 편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해도, 손자가 이미 죽었다고 수십 번 말했는데도 요한이 지나갈 때마다 손자에게서 온 편지를 찾는 치매에 걸린 키제베터 노인을 날마다 마주쳐야 해도, 눈폭풍이 몰아쳐도, 요한은 자신의 일상을 그만두지 않는다. 우편배달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이 멸망하는 날에도 우편배달을 하러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될거야!"
'그럼요'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거에요' (p98)
히틀러가 자살하고 패전국이 된 독일로 연합군이 들어온다. 러시아군들이 일곱 마을을 다니며 모든 것을 쓸어가고 더 이상 배달할 우편물은 도착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던 우편물이 종전이 되니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요한이 근무하던 우체국은 문을 닫고 요한은 처음으로 제복을 벗고 우편가방을 내려놓는다. 할일이 없어진 요한은 전쟁 중 요한의 마을을 방문했다가 요한과 연인이 된 이르멜라를 데리고 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처음으로 제복과 우편가방 없이 마을을 나서는 요한의 발걸음에서 찰나의 희망을 본다. 하지만 전쟁의 뒤끝은 씁쓸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종전을 했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이 씁쓸한 뒤끝을 책임질 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