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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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라파엘전파인 밀레이의 <오필리아>라서 바로 꽂혔던 책이다. 예로부터 화가의 모델이라고 하면 '여자'가 연상이 되지 남자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남자는 대부분 자화상이나 단체를 그린 그림, 혹은 왕실의 초상이나 역사화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모델을 직접적으로 놓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성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여성의 모습은 자신의 뮤즈 혹은 연인의 얼굴을 투영시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런 그림 속의 여성을 들여다보고 그림 속 여성의 모습이 들려주는 화가의 의도나 감정 등을 읽어내고 있다. 그냥 개인적인 감상 포인트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를 꼼꼼하게 검증하고 있어 화가의 다른 그림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속의 그림들 대부분이 익숙할 것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나나>처럼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가 된 그림들도 있고 당시의 시대에 비추어 파격적이거나 실험적이라 논란이 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나 쿠르베의 <샘> 같은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 화가는 젠틸레스키와 수잔 발라동 그리고 나혜석, 이렇게 세 사람이 유일한데 그들이 그린 여성은 자화상 혹은 자신의 얼굴을 투영한 작품 뿐이라서 대상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쉽기도 하다. 즉 남자가 그린 남자의 시선 속 여성이 대부분이라는 것인데 같은 대상을 보는 남녀의 차이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인 '유디트'를 그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다른 남성 화가들의 그림만 보아도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어서 아마도 당시에 여성 화가들이 많이 있었더라면 좀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화가들의 스타일이 어찌나 이리도 다른지 새삼 놀라게 된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순응하고 만족하며 시대가 원하는 그림만을 그렸던 화가도 있고 평생을 시대의 반항아로 살았던 이도 있으며 뮤즈와의 만남과 작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도 있다. 시대에 따른 대중들의 변덕 또한 화가를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될 조연이다. 아무리 그림에 소질이 뛰어난 화가라고 할지라도 그 그림을 감상하고 소비할 대중이 외면하면 견딜 수 없는 법. 그렇게 각각 다른 색을 입고 살던 화가들이 때로는 시대를 대변하고 때로는 시대를 넘어서면서 그려낸 그림들 속에 숨겨진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새 좋아하는 화가 혹은 그림이 추가되거나 바뀌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경우는 피에르 보나르와 페르디난트 호들러라는 화가와 그들이 모델이 된 마르트 드 멜리니와 발렌틴 고데-다렐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화가들이 자신의 붓을 통해 세상에 남기고 싶어했던 여자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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