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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묻다 - 특별한 정원에서 가꾸는 삶의 색채
크리스틴 라메르팅 지음, 이수영 옮김,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루크너 사진 / 돌배나무 / 2020년 7월
평점 :
점점 초록이 좋아지고 식물에 관심이 생기는 걸 보면 나이가 들고 있긴 하나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정원'의 개념은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주택 형태가 아파트인지라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집에 사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같은 경우는 완전 대도시가 아닌 경우의 대부분의 집들이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고 그것을 가꾸지 않고 방치하면 이웃집에서 신고를 할 정도로 정원 가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책은 유명한 여성 정원사들 11명의 정원에 대한 철학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들의 특별한 정원을 엿보는 것은 덤이다.
'영국식 정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타샤 할머니 덕분이다. 10여년 전 '타샤의 정원'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나 역시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만났는데 유럽에서 '정원'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스케일이라는 걸 알고 놀랬던 기억이 난다. 책에 소개된 정원사들이 가꾸는 정원들도 그에 못지 않다. 대부분이 집안 대대로 가꾸어 온 영지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녹색 엄지손가락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나무나 꽃을 심고 가꾸는 행위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할까 싶지만 열두명의 정원사 이야기를 읽고 나면 정원이 그것을 만들고 돌보는 이의 개성과 철학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 알게 된다.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년 정원가꾸기 행사를 위해 소유한 정원의 일부를 실험적인 디자인을 위한 공간이 탄생할 수 있도록 플랫폼으로 제공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과 유익한 것'의 조화를 선택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식물을 재배하는 치킨 정원으로 만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원이 딸린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비네 레버는 공유지의 노는 땅을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과 '이동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실험하면서 정원을 가꾸는 일의 기쁨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정원사도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순수한 관심과 기쁨으로 식물을 대하면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온전하게 가드닝에 바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모두 정원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그녀들의 정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으니 이 책이라도 곁에 두어야겠다. 혹시라도 내게 아파트를 벗어나 한줌의 땅이라도 가질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나무, 꽃, 풀을 심을 지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