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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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p23)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사실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보통은 시력을 잃은 음유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실존적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부분은 호메로스가 뿌리이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모든 문학작품들도 호메로스에 빚지고 있다. 왜 우리는 호메로스에 열광하는걸까? 아마도 그 답은 위에서 인용한 본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호메로스가 인간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신들이 세상을 주사위판으로 놓고 인간을 주사위 삼아 놀이를 하고 있을지언정, 인간은 유한성과 소멸성을 무기삼아 신들의 불멸성에 대항하는 존재, 신들이 쳐놓은 경계를 기어이 넘고야 마는 속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고 호메로스는 바로 그러한 인간의 히브리스(오만)를, 망각을, 어리석음을, 용기를, 그리고 결국엔 인생의 달콤함보다 집단적 기억으로 남기위한 명예를 선택하는 그 불완전한 인간을 노래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특별한 프로그램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기획한 문학의 거장과의 만남 비슷한 그런 프로그램으로 <~와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 중 하나였다고 한다. 누구나 들어보았지만 읽어보지 못한 거장들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나본데 마치 얼마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던 '책 읽어드립니다'의 작가 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몽테뉴, 프루스트, 빅토르 위고 등 쟁쟁한 작가들이 많이 다루어졌지만 호메로스가 단연 압도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리아스>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트로이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은 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저자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구절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호메로스가 새겨넣은 의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풀어내고 그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노래한 작품 속 인물들과 사건들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기가막히게 데칼코마니처럼 적용될 수 있는지를 피력한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현재를 끌어다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도 가끔은 틈새를 허용하는 신들과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순응하는듯 하면서도 자유의지로 반항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는 뜻이다. 비록 저자처럼 호메로스가 있었을법한 에게해의 바람을 맞으며 이 책을 읽을 순 없었지만 방구석 독서만으로도 호메로스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호메로스 시대에서 500년이 흐른 뒤의 시대를 살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킬레우스에게 느낀 질투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 손! 신을 어머니로 둔 행운? 목숨보다 명예를 선택한 용기? 아니다. 바로 아킬레우스가 평안한 삶보다 명예를 선택했음을 후세에게 널리 알려준 호메로스를 만났다는 것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러니 말 다했다. 호메로스를 안읽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도 일말의 의심이 남는 이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저자와 호메로스의 궁합이 장난 아니다.


호메로스 이후로 500년이 흐른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찾아가서 트로이 전쟁의 무적의 전사를 행복한 영웅이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용맹한 행위를 전하는 메신저로 호메로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명예는 클릭수 100만을 넘기는 데 있지 않고 '신의 영감을 받은' 음영시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데 있었다. 문학을 전도하는 나는 그 시대가 그립다.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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