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0629 에디션 -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 기념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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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전즈음에 읽었던 <사막별 여행자>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는 사하라 사막 유목민족이었는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문명이라는 것 없이 생활하는 민족이다. 저자가 13살일 때 그 근처를 취재차 방문했던 한 기자의 가방에서 떨어진 책을 줍게 되는데 그게 바로 <어린왕자>였다. 당연히 프랑스어를 몰랐던 저자는 먼 학교까지 다녀가며 글을 배워 책을 읽고 감명을 받게 되는데 생텍쥐페리가 이미 죽은 사람인 줄 모르고 그를 찾아 사막을 떠나 프랑스로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어린왕자>는 그만큼 전세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0629어린왕자 는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겨준 생텍쥐페리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특별판이다. 보통 다른 어린왕자판은 어린왕자가 그려진 그림이 표지에 실리는데 이 책은 '어린왕자'를 우리 마음에 존재하게 해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저자의 탄생일을 모티브로 표지를 제작한 듯 하다. 표지에 끌려 그동안 여러번 읽은 어린왕자를 다시 한번 읽었다. 아..번역자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1982년에 처음 어린왕자를 번역했던 원로 불문학자 전성자 선생님이 40여년만에 다시 번역을 하셨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나이드신 분이 번역한 어린왕자는 어딘지 고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말해두고 싶다.


   내가 작품 속에서 가장 아끼는 부분은 여우가 나오는 장면과 마지막에 어린왕자가 다시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이번에는 다른 부분에서 뭉클함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어린왕자가 읽을때마다 약간씩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술꾼이 사는 별을 방문한 장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왜 술을 마시냐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술꾼은 잊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냐는 질문에 창피함을 잊기 위해서라고 하고 뭐가 창피하냐는 질문에 '술 마시는 게 창피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떤 일이 창피하면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걸 덮기 위해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어른들의 위선을 어린왕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약간은 술꾼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다. 그럴 수도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작은 별에 살기 때문에 의자를 조금씩 움직이기만 하면 언제든 석양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 네번이나 보았어!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에는 해 지는 풍경을 좋아하게 되지...

마흔 네번 본 날, 그럼 너는 몹시 슬펐겠구나?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어린왕자, p31)


   사실 내가 좋아하는 번역은 '몹시 슬펐겠구나?' 보다 '몹시 슬펐던거야?' 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몹시 슬펐던거야?'라는 말에서는 어쩐지 위로같은 게 느껴진다. <어린왕자>는 사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더 많은 울림을 받는 것 같다. 새로운 판본이 나올 때마다 기웃거리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로부터 얼만큼 떨어지게 되었을까? 석양이 보고 싶으면 의자를 옮겨가며 마흔네번이나 보았던 어린왕자처럼, 사실 우리도 의자를 옮기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의자를 옮기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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