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 - 한시가 인생으로 들어오다
이은영 편역 / 왼쪽주머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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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시'라는 장르는 나에게 어렵게 다가오지만 각운의 운율감이나 잘 짜여진 댓구가 주는 명쾌함이 좋아서 한시는 가끔 읽어보게 된다. 한시란 말 그대로 한자로 쓰여진 시이다. 이 책은 한자 문화권이던 한중일, 세나라의 한시 312수를 선별하여 편역을 담은 것으로 한자의 음과 뜻 뿐만 아니라 한시 하나하나마다 역자의 해석과 생각까지 수록하고 있어 평소 한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시를 읊는다는 것은 한자를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이요, 그럴만한 시간과 여유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시는 벼슬을 할만한 위치에 있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시의 소재는 비교적 한정적이다.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하거나 충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간신에 휘둘리는 군주의 무심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자연의 풍류나 인생무상을 노래하기도 하며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시들만이 아니라 서얼이나 스님 그리고 여성들 특히 기생들의 시까지 골고루 담고 있는데다 시를 지은 이들의 삶과 사연, 당시 사회상 등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이 곁들여 있어 이해를 돕는다. 특히 민중들의 어려운 생활을 담은 시나 사회 비판적 풍자가 담긴 시들을 읽고 있으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312편의 시를 하나하나 읽고 있자니 어쩐지 인생의 의미를 헤아려 보게 된다. 시라는 것이 그런건가 보다. 한때는 시대를 호령했던 이들도, 속세가 싫어 자연의 무상무념으로 도피했던 이들도, 그저 님이 그리워 애절한 마음을 삭혀야 했던 이들도, 시대의 차별과 불공평에 분노한 이들도 결국은 모두 인간이라는 것. 문학의 본질이 그렇듯 시 역시 인간과 그들의 인생을 빼놓고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보다. 마음에 와닿는 시들이 많아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시 두 수 정도만 공유해본다.


澤國江山入戰圖(택국강산입전도) 아름다운 이 강산에 전쟁이 터졌구나

生民何計樂樵蘇(생민하계낙초소) 백성이 무슨 수로 생업을 이어갈까

憑君莫話封侯事(빙군막화봉후사) 전쟁은 귀족의 일이라 말하지 마오

一將功成萬骨枯(일장공성만골고) 한 장수 공 세우려 만백성 뼈 빠지오

<기해세, 조송>


木梳梳了竹梳梳(목소소료죽소소) 얼레빗으로 처벌 빗고 참빗으로 빗으니

亂髮初分蝨自除(난발초분슬자제) 봉두난발이 가지런해지고 이도 잡는다

安得大梳千萬尺(안득대소천만척) 천만 자 되는 크고 긴 빗을 구해서

盡梳黔首蝨無餘(진소검수슬무여) 백성 피 빨아먹는 이를 모두 잡으리

<소(빗), 유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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