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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중고등학교 때 편지나 엽서를 진짜 많이 썼다. 여학생들끼리 뭐가 그렇게 애틋하고 애잔하고 그랬는지 사춘기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오바감성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특히 예쁜 엽서를 사서 글을 쓰고 코팅까지 해서 줄줄이 비엔나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심지어 그때 받았던 엽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내가 쓴 엽서를 가지고 아직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으려나..


스웨덴 국민화가라 불리우는 칼 라르손의 그림은 그런 엽서에 단골로 등장할만한 그런 행복한 그림들이다. 초기작인 약간의 유화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청량감 가득한 수채화인데다가 북유럽의 감성이 듬뿍 담긴 집안의 풍경과 그 안에서 지내는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라 사춘기 여학생들이 충분히 빠질만한 감성이다. 칼 라르손과 그의 그림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보아왔는데 이렇게 그의 그림이 올 컬러판으로 양껏 담긴 소장각 제대로인 책이 등장했다. 저자는 칼 라르손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몇년 간 그의 삶과 그림들의 흔적을 찾아 다니고 그의 그림 속에 가득한 행복의 근원이 궁금해서 머나먼 북유럽의 오지에 있는 그와 그의 가족들의 영혼이 담긴 집인 릴라 히트나스까지 다녀와 거기서 발견한 행복을 우리에게 전한다.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저자 역시 칼 라르손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의 죽음까지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그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건 평생 반려자였던 부인 카린과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8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이다.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 성장한 모습까지 칼은 그 모두를 그림으로 남겼다. 자신과 가족들의 삶의 순간순간을 남기고 싶었던 칼의 마음이 그림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그가 그린 건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그와 가족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아름다운 집인 릴라 히트나스, 그리고 농장 스파다르벳을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와...정말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집안의 거의 모든 인테리어가 부인인 카린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왜 그녀가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것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 새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이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저자가 글로 주절주절 설명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그의 그림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마음껏 담은 그림들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독자라면 따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다. 비록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가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휘게, 라곰 같은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능력이 독보적인 화가임에는 틀림없다. 이유없이 기분이 울적해질 때 이유없이 다시 행복한 기분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그의 그림들을 나의 집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어놓고 싶어진다.
* 그런데 명백한 번역 오류 : <The Bride>란 작품을 '신부'가 아니라 '다리'라고 번역. 그림 제목에도 본문에도...누가 봐도 신부 그림인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