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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몇년 전 '레이디 맥베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 덕분에 (사실 아직 영화도 보지 않았다) 몇년 전 구입했지만 지금까지 읽는 걸 미뤄두었던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집이다. 작품집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렇다, 여기에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말고도 다른 중편 소설인 '쌈닭'이라는 작품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작가는 톨스토이가 아주 극찬을 했던 작가라고 하는데 두 작품을 읽어보니 마땅한 칭송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러시아 작가하면 생각나는 이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설사 다 읽지 않았더라도) 떠올려보면 어렵다, 음울하다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 그런데 레스코프의 작품은 너무나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묵직하다. 마치 동 시대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반항이라도 하듯 말이다.
우선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부터.
깨어나면 또 다시 러시아의 권태,
상인집의 권태가 찾아온다.
그걸 견디느니
차라리 목을 매고 죽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이다.
- 본문에서
그렇다. 모든 것이 '권태'로부터 비롯되었다. 만약 맥베스 부인인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 이 '권태'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살다가 돈 때문에 상인 지노비 보리스이치와 애정없는 결혼을 한 후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다. 예전의 시대들이 그렇듯 대를 이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조건 여자 탓이다. 대를 이을 아이를 낳기 위해 돈을 주고 데려온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큰일이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부유한 시아버지 집에서 하품이나 하면서 매일매일을 지루한 삶을 살고 있고 그녀의 이런 권태에 남편은 물론이고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으로 이 권태가 흔들린다. 한번 권태의 벽을 깨고 금지된 자유를 맛본 카테리나는 무조건 직진 본능을 따른다. 억압되었던 본능은 분출하기 시작하자 멈출 줄을 모른다. 세르게이에 대한 경고와 그의 비열함을 나타내는 온갖 표시에도 카테리나에게는 세르기에가 그녀를 권태로부터 구해 준 구원자로서의 콩깍지가 단단하 씌여있다. 그렇게 살인 한번, 살인 두번.. 넘지 않았어야 할 세번째 살인은 결국 그녀를 파멸로 이끌지만 카테리나는 그녀의 구원자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괜찮다. 더 나은 미래 따위는 없어도 좋다. 마지막 물귀신 작전까지..와..정말 끝까지 완벽한 직진이다. 그녀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욕망을 선택하고 끝까지 그 욕망에 충실한다.
두번째 소설 <쌈닭>.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쌈닭'을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속에 권태와 억압 속의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있다면 '쌈닭' 속에는 끊임없는 수다와 확신에 찬 거침없는 행동파인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있다. 제목도 '쌈닭'이라니 정말 잘도 지었다.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수다는 '페테르스부르크의 물정'으로 대변되는 세상이 벌이는 온갖 나쁜짓들에 대한 그녀의 오지랖이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씩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할 뿐 모든 이야기는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수다 속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수다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진짜 허무 결말... 결국 화자인 '나'는 이 결말을 위해 존재한 듯 하다. 이 결말은 그녀의 수다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말이다. 결국 혼자 똑똑한 척 하고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대는 돔나 플라토노브나도 자신의 일은 오지랖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보다.
중편소설 두편이지만 그 어떤 장편 소설에 못지 않는 읽는 재미를 선사했던 작품들이었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이 작가를 기억해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