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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 172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평점 :
와..이게 얼마만에 읽어보는 #걸리버여행기 일까. 아마도 어렸을 때 세계문학전집 뭐 ..이런 곳에 포함된 책으로 읽고 안읽었을 것이다.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 라는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완역본을 읽어볼 생각은 아마 먼 미래에나 했을 듯 하다. 어서 시즌2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하면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만 기억난다. 그래서 라퓨타나 럭낵 그리고 휘넘국이라는 곳에서 걸리버가 겪은 모험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 알고보니 우리나라에는 소인국과 거인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최초로 번역된 것이 1992년이라고 하니 모르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제외되었던 이유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로 나오다 보니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아서 삭제했을 수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그 풍자의 신랄함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마지막에는 인간 혐오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니 그런 것에 선동될까 두려워 취해진 일종의 금서 조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이 어렸을 때 우리도 가끔 해보던 것이라 쉽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소인국이나 거인국, 하늘을 나는 도시 같은 것들은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상상 속 세상이다.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의 진짜 매력은 단순한 상상력 발휘가 아니라 거기에서 인간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어렸을 때 동화의 하나로 접했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저 여행기의 형식을 빌렸을 뿐 아주 작정하고 자신이 살던 시대와 세상과 관습을 제대로 까내리는 작품이다.
누가누가 외줄타기를 잘하나로 관직에 오르고 굽이 높은 신발을 신느냐 낮은 신발을 신느냐로 당파 싸움을 하고 달걀을 어느 쪽으로 깨먹느냐로 전쟁을 하는 릴리펏인들은 현대의 정치인들과 특정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아부하는 이들을 제대로 풍자한다. 거인국인 브롭딩낵에서는 오히려 걸리버 본인을 통해 인간들의 자만심과 악행들이 까발려진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자연이 이 세상을 기어다니게 허락해 준 벌레들 중에서 가장 악독한 해충들이다'라는 브롭딩낵 국왕의 결론이 씁쓸하다. 하늘 위에 떠있는 도시 라퓨타를 통해서는 인류의 정신적 자산이라고 자랑하는 학문, 예술에 대한 풍자가 계속된다. 아마도 작가는 비실용 학문이란 하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휘넘국에서 우리 인간은 야만족인 '야후'라고 불리우며 지상 최고의 쓰레기로 변모한다. 결국 걸리버는 본인이 혐오해 마지 않는 '야후'의 세계로 돌아오지만 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걸리버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걸리버와 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를 완전한 동일인으로 간주하지는 않더라도 실제 작가의 삶과 비교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풍자문학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테니 말이다.
초판본시리즈로 핫한 #더스토리 의 판본으로 읽었보았는데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은 물론이고 초판본 일러스트 80여컷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번역도 스위프트 전공자 분이 하셨다고 하니 믿음직하다. 특히 걸리버 여행기를 풍자에 더해 '걸리버가 겪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극적 자각 여행'이라고 설명한 역자 후기가 재미있다. 간혹 보이는 소소한 오타들은 개정판에서는 잘 보정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