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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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은 르네상스 시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에서 루도비코를 군주로 모시고 있던 시기이니, 1482년에서 1499년 사이 그 어디쯤이고 공간적 배경은 밀라노인데, 여기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모든 걸 서술하는 이 관찰자는 21세기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소설 속에 21세기의 오브제를 그대로 삽입하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독자는 누군가가 소설 한편을 만담 형식으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몰입도가 좀 떨어진다는 소리이다.


   소설의 소재는 단편적이지만 흥미롭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이 죽은 자가 밀라노 군주인 루도비코의 성안뜰에 놓여있는지 알길이 없다. 루도비코는 그가 신뢰하는 두 사람을 불러 시체를 보고 원인을 파악하게 하는데 한 사람은 왕궁 점술가인 암브리지오 바레세 다 로사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사건이 위조된 신용장 및 화폐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내고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소설 속 살인사건과 얽힌 일련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장치들을 사용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들인 루도비코 일 모로 공작, 레오나르도 다 빈치, 루도비코가 가장 총애하던 애인이자 레오나르도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의 모델로 여겨지는 체칠리아 갈레라니, 루도비코의 아내인 베아트리체 데스테 등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카인 비앙카를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부분이나, 샤를8세가 나폴리를 침공하도록 충동질하는 것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스포르차 가문을 위한 말 청동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청동들이 결국은 프랑스와의 싸움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된 사실 등은 실제 역사에서 가져온 장치이다. 그러니까 역사 속 실제 사건들을 주변에 잘 깔아두고 그 가운데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고 잘 버무린 작품이다. 사건 자체는 단편적이기는 하나 그 사건이 의마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당시 조그만 도시 국가로 분열된 이탈리아의 상황과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 그리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호시탐탐 노리는 프랑스와의 권력다툼이라는 훨씬 거대한 의미를 작가는 이 사건 속에 숨겨놓고 있다.


   작가는 레오나르도의 입을 빌어 인간을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되게 하는 척도에 관한 이야기로 진지하게 마무리를 하는데 사실 나로서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끝맺음이라고나 할까. 그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 맘대로 상상력을 발휘한 것에 대한 사과인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천재도 결국 실수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그를 천재로 만드는 건 재능이 아니라 자연을 척도 삼아 배우고 실수를 해결해 나가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은 레오나르도에 대한 헌사인지 모르겠지만 잠시나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이 주는 후광을 뒤로 하고 그의 다른 면모를 상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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