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꿈결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백정국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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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은 정말이지 대학교 때 읽고 다시 읽어보자 생각도 해본적 없는 작품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어리석음이었는데, 당시에는 읽고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그저 그렇고 그런 치정극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강산이 몇번 변할 세월을 뛰어 넘어 지금 읽으니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각종 감정들을 모조리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설명이 아니라 독백과 대사를 통해 문학적으로 표현해 내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번역본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그동안 '문학적 지위'를 거의 누리지 못한 영어라는 언어를 확고하게 신분상승 시키는 역할을 한 장본인이 셰익스피어라고 하니 언제 다시 한번 원문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햄릿>하면 고정관념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그의 우유부단함이다. 기회가 있을 때 숙부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못하고 결국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인들의 죽음을 가져온 사실 때문에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그것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완전한 복수를 꿈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신중함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죽기 전 고해성사를 받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 살아생전 아무리 나쁜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낮잠을 자다가 갑작스럽게 독살당하는 바람에 이런 참회를 하지 못해 연옥을 떠돌며 고통을 받고 있는데 클로디어스는 회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자신이 죽여버리면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구원받고 천국에 가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내가 진정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그가 나쁜 짓을 하는 순간 죽여버리는 것이 그의 영혼조차 구원받지 못하는 진정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어찌 우유부단함의 상징이 되었을까나. 그가 그 자리에서 클로디어스를 죽였더라면 그 뒤의 연쇄적 살인은 없었을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과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의미없는 논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햄릿이 이 완전한 비극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저 깊은 안쪽에 숨기고 싶은 욕망과 감정을 다양한 인물들에 투영하여,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변사의 설명이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관객 각자가 다시 그 대사를 자신의 욕망이 반영된 감정으로 치환시켜 받아들이도록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자신의 감정으로 변환시켜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햄릿>에 관한 논쟁에 정답은 없을 것이며 수세기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힘을 찬양할 수 밖에.

 

   이번 꿈결 클래식 판본은 번역도 훌륭한 것 같다. 내가 번역이 이렇다 저렇다 할 입장은 아니지만 독자로서 번역본만으로도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위대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번역의 논란이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은 구절이나 그 이외에도 단어의 사용에 있어서 중의적 의미가 있는 부분은 친절하게 주석으로 설명하면서 번역자 본인은 왜 이 의미나 번역을 선택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역시 고전은 왜 읽어야 하는지 깨달음을 다시금 주었던 <햄릿>이었다.

 

* 한가지, 책의 중간중간 실린 일러스트들이 너무 현대적이라 몰입하기가 좀..햄릿이 양복입고 나와야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랄까..

* 작품을 읽고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의 <햄릿> 편을 보기를 권한다. 진짜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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