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평점 :
이 작품도 작가의 최신작은 아니고 2000년 초반에 출간된 작품의 재출간이다. 하지만 뭐 난 읽지 않은 작품이니 신작이나 마찬가지이다. 얼른 읽고 싶다는 마음에 표지나 띠지의 문구 같은 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내용이 표지와 띠지에 함축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우선 표지의 그림을 보면 1권은 보름달 아래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있고 2권은 배경은 같지만 서로 등을 지고 제 갈길을 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띠지를 보면 1권의 띠지에는 '백야행의 흥분과 전율을 잇는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과연 백야행의 속편같은 느낌이 든다 (찾아보니 작가는 백야행의 속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편의 띠지에는 '비록 그녀와의 밤이 환상일지라도...'라는 문구가 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걸 알게 된다. '환야'라는 제목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환상의 밤..
이번 작품도 전개는 전형적인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철저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모든 사건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 여성의 철저한 계산과 계획 아래 진행되고 그녀로 인해 결국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도 생기고 그녀로 인해 스타로 거듭나면서 승승장구하는 이도 생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의 뒤에 신카이 미후유라는 '빅 보스'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낸 이 모든 어둠 속에는 미즈하라 마사야라는 한 남자가 있다. 여기에서 <백야행>의 유키호와 료지가 투영된다. 료지는 어둠 속에 살았지만 유키호를 태양을 대신하는 존재로 여기며 자신은 유키호가 발산하는 빛만으로 충분했다고 하지만 마사야는 그런 빛조차 미후유로부터 얻지 못한다. 하지만 마사야는 환상같고 신기루 같은 그녀와의 밤을 그녀를 지켜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로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많이 읽어서일까. 아니면 작가가 이번에는 독자에게 선심을 쓰기라도 한 것일까. 미후유의 수법을 한두번 겪고 나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녀가 이 사건을 어떻게 꾸몄을지 그 수가 대부분 읽혀버리긴 했다. 그래서 뭔가 우쭐한 기분이었는데, 마지막에서 그 기분을 산산조각내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미후유와 가토형사의 대화에서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았던 것이다. 어...잠깐..그래...사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미후유에게 보기좋게 당한 건 아닐까. 신카이 미후유는 그저그런 인물이었고 '스칼렛 오하라'는 그녀의 롤모델이었는데, 왜 나는 '스칼렛 오하라'가 신카이 미후유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와...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