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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일상에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그림 에세이는 저자가 읽으면서 책 속의 시간과 공간이 현실 세계로 들어오고 책 속의 인물들과 말을 하는 듯한 여행과 같은 체험을 한 열세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속독이나 (나는 속독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지만) 앉은 자리에서 후딱 읽어버리는 그런 독서를 해서는 안된다. 책 한권을 들고 다니며 나의 생활 속에서 느리게 느리게 책 속의 시간과 보조를 맞추며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이 열세권의 책만큼은.
열세권 중에서 내가 진짜로 읽은 책은 <오셀로 -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오이디푸스 왕 - 소포클레스> 이렇게 네권이다. 그리고 <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과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화로만.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죄와 벌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페스트 - 알베르 카뮈> <변신, 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이렇게 다섯권은 제목만 엄청 잘 아는 책들이고 <픽션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작가는 알지만 작품은 처음 들어보고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는 작가도 작품도 처음 들어본다.
이 책은 단순히 작가가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책을 마주하기 전부터 받았던 책에 대한 인상을 나누고 책 속 등장인물들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오늘날 우리가 왜 이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깊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독자를 자신의 여행에 각자의 방식으로 동참해보도록 하는 동기부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정보과잉 시대에 들리는 그런 편견이나 막연한 추측으로 거르지 말고 직접 읽어보라고 이야기한다. 샀으나 책장에 꽂아놓고 읽지 않아 먼지만 쌓인 책들의 목록을 떠올려 보라.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바로 지금 그 책을 꺼내야 할 때이다.
실제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이름이 익숙한 작가들이 있다.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너무 많이 들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이미 읽은듯한. 책을 펼치기도 전에 벌써 조금 지겨운 기분이 드는. p20-21
영화가 있고 잘라져 나온 구절들이 있고 음악이 있다. 그리고 인용되고 변형되고 그림자를 드리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니 이제와 새삼 책을 읽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이미 다른 형태로 지겹도록 듣고 보아 온 책을 마주 대하는 이 어색함. p76
저자가 열세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만화로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어딘지 촌스런듯한 스타일의 주인공이 책 속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자기만의 여행에 빠져있는 모습이 흐뭇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내리려던 지하철역을 지나친 것을 깨닫는 그런 경험에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자신만 알 수 있는 그런 미소를 흘릴 것이다. 각 장마다 저자가 '이 장면'이라는 제목으로 뽑아낸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같은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 장면'과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듯. 책읽기에 정답이 있을리는 없지만 어쩐지 모범답안 사례 같은 그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