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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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소설이라고 그냥 읽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하게 된다. 약물 중독자들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환상들과 정신없는 행동들이 준비되지 않은 독자들을 난타한다. 그러니 첫 장을 넘기기 전에 우선 필립 K.딕의 일생과 그가 겪었던 약물로 점철된 생애에 대해 알아보기를 권한다. 별도로 검색하지 않고도 책 뒤의 작가의 말과 역자 후기만 읽어봐도 괜찮겠다.

 

   70년대에 쓰여진 이 작품은 미래의 이야기이다. 근미래이다보니 우리에겐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작가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점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미국은 이미 마약류를 비롯 각종 약물중독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길거리에는 중독자과 각종 약물들의 거래가 거의 대놓고 이루어질 정도이다. 정상인들은 격리된 구역 안에서 생활하고 정부는 약물을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하는 윗선을 검거하고자 곳곳에 잠입수사관들을 파견한다. 하지만 정부조직 안에도 어떤 스파이들이 있을 지 모르는 법. 그래서 잠입수사관들의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그들이 상부에 보고할 시에는 그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해주는 특수 의상을 입는다.

 

   이야기는 잠입수사관이 되어 약물중독자들과 같이 생활하는 밥 아크터(수사관일때의 닉네임은 프레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모든 약물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약물은 D 물질이라 불리우는 약물인데 잠입 수사관 역시 중독자들의 배후를 캐기 위해서 어느 정도 약물에 중독될 위험을 무릅쓸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중독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모든 걸 알면서도, 저들과 함께 환각으로 뒤덮인 피해망상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렸어. (p165)

 

   수사관끼리도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다보니 서로를 감시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하여 밥 아크터의 집에도 그를 감시하는 홀로스캐너가 설치되고 프레드는 밥 아크터가 찍힌 영상을 보면서 자신을 감시하고 자신의 행동을 상관에게 보고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떤 거물이 있을까라는 평범한 궁금증이 생기는데 오..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반전 위에 또 다른 반전도 있다.

 

   제목인 '스캐너 다클리'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역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긴하다.

 

스캐너는 무얼 볼까?...그러니까 실제로 무얼 보느냔 말이야. 머릿속일까? 마음 속 깊은 곳을 비출 수도 있나? 또렷하든 어둑하든? 스캐너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나 자신의 내면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으니까. 그저 캄캄할 뿐이니까. ..스캐너조차 나와 마찬가지로 어둑하게 볼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지금껏 괴로워하던 저주를 다시 받은 셈이고 결국 그런 식으로 죽게 될 테니까...(p299)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보아도 자신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에는 분열이 일어난다. 스캐너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어둑하다. 결국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인가. 약물중독자들을 치료한다는 뉴패스라는 곳이 정말 그들을 위한 곳인가. 소설 속 프레드의 절망에 찬 외침은 저자 자신의 고백이고 외침일 것이다.

 

* 실사 촬영을 만화 스타일로 만든 동명의 영화도 있다하니 찾아서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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