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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뜬금없는 소리같지만 '길들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만나는 장면인데,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같이 놀자고 하자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길들인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서 서로에게 길들여진 존재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길들임' 역시 여우가 말하는 '길들임'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의 우리는 개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쌀, 옥수수, 감자 등을 농사지어 수확하는 행위를 인간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대체 언제 어떤 계기로 호모 사피엔스는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 책은 바로 우리 종 즉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아홉가지 종(개,밀,소,옥수수,감자,닭,쌀,말,사과)과의 길들임의 역사와 마지막으로 인류가 어떻게 스스로를 길들였는지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
사실 표현의 차이일 뿐이지 길들임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다루었다. 다만 이 책에서의 신선한 관점은 '호모 사피엔스'만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선택했고 누가 누구를 길들였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주도한 쪽이 어느쪽이냐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어 설명하는 점이 재미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개는 늑대가 길들여진 결과라고 하는데, 처음 야생의 늑대가 인간과 동맹을 맺게 된 계기가 (빙하기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터전으로 내려왔다던지) 길들여짐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늑대의 행동에는 인간과의 유대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을만한 특별한 무언가가(p56)'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보통 꽃이 벌을 유혹하여 벌이 꽃가루를 실어나를 수 있도록 하는데, 이건 꽃이 벌을 길들인 것일까 벌이 꽃을 길들인 것일까.
저자는 야생의 동물과 씨앗이 가축과 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인간과 타이밍 및 장단이 서로 맞아야 했을것이라는거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라기보다는 인간이 생활방식을 바꾸려고 하던 그 시점에 (예를 들어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랄지..유목에서 정착으로랄지) 인간의 이런 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종'이 바로 길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장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길들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주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교잡의 흔적을 추적한다. 사실 책 속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고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유전자학의 발달로 아주 작은 DNA안에서도 논거를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지켜볼만한 논쟁임에는 틀림없다. 저자가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큰 쟁점이 바로 유전자 조작의 안전성과 도덕성에 관한 부분인데, 쉽게 말하면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옥수수가 특정 질병에 취약하다면 이 질병에 내성을 갖고 있는 다른 식물의 유전자를 옥수수에 이식하여 (즉 옥수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질병에 걸리지 않는 옥수수로 아프리카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냐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이게 옥수수로 끝나는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면 우리는 왜 주저하는가. 호모 사피엔스의 특정 유전자가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하는데 불리하다면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생존하게끔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지, 과연 그것이 생존을 위한 종의 자연선택일지는 생각해볼 문제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