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대미지의 일기
벨린다 스탈링 지음, 한은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어판 표지도 뭐 나쁘지는 않지만 원서의 표지가 훨씬 더 소설을 돋보이게 한다.

 

 

   아..왜 표지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소설이 바로 책을 제본하는 제본사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책을 대량으로 인쇄하고 제본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50년대의 영국은 우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상류층 백인이며 그 중에서도 고급 가죽장정으로 제본된 책을 소유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이들만이 과시용으로 책을 소유하던 시절이다. 대체적으로 여성과 유색인은 글을 모르는 건 당연하고 알아서도 안되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무대는 찰스 디킨스의 <하드 타임즈>가 저절로 떠오르는 산업혁명으로 온 도시가 공해로 뒤덮이고 공장으로 모여든 하류층은 더더 빈곤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던 1850년대의 런던 외곽의 '대미지 제본소'이다.

 

   대미지 제본소를 운영하는 피터 대미지가 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되자 부인인 도라 대미지가 여성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살아남기 위해 직접 책을 제본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맡겨진 제본을 위한 책들의 내용은 괴기하고 외설적인 것들로 가득하고 그녀에게 일을 맡기는 '고귀한 야만인'들의 정체는 의문투성이다. 게다가 미국의 흑인들이 노예생활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돕는 '귀부인협회' 부인들이 흑인들에게 갖는 왜곡된 욕망과 의사들의 비인간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처방과 시술에 관한 이야기 등 당시 시대상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병든 남편과 어린 아이를 먹여 살리고 돌보아야 하는 삶이라면? 해야 할 일만 있고 공정한 대접과 정당한 욕망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라면? 도라 대미지는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던 시대의 '공정하지 않은 성(unfair sex)'인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의 금기의 영역에 도전했던 인물이다. 소설의 내용은 자극적이고 무작정 내달리는 광포함으로 가득차 있지만 '제본'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제본에 대한 묘사가 다분히 시각적이라 어쩐지 영화로 만들어지면 <향수>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책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을 탈고하고 얼마 안있어 3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