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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버 보이 - 당신의 혀를 매혹시키는 바람난 맛[風味]에 관하여
장준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9월
평점 :
플레이버 보이라는 언어 유희가 재미있다.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책의 제목과 표지일테니, 새삼
제목이 갖는 중요성을 실감한다. 기자였던 저자가 음식과 요리에 매혹되어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요리사가 된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혀를
춤추게 만드는 플레이버(flavor) - 풍미, 바람난 맛을 찾아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그 여정을 기록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전체적으로 짤막짤막한 토막이야기들인데다가 맛깔난 사진들까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내가 맛본 음식이 나올때는 당시 여행의 즐거움이 떠올라 기분좋고 내가 가본 장소가 글과 사진 속에 등장할 때는 어디
달라진데 없나하면서 틀린 그림 찾듯이 꼼꼼히 보게 된다. '맛'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맛'을 우우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맛있다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른데 우리가 흔히 맛집이라고 하는 곳들은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저자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다 보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음식의 맛에는 원형이 있으리라 여긴다....(중략) 어떤 음식의 맛이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와 가깝다. 의자라는 하나의
이데아(관념)은 공유하지만 머릿속에 떠올리는 의자의 형태는 각각 다르다. - 본문 249p
특정 음식의 맛에 원형은 없을지언정 맛의 기본을 이루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최고의 맛을 찾기 전에 저자는 맛의 기본을 이루는 것들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다. 그것은 지방이나 소금처럼 어떤 물질일
수도 있고 숙성이나 발표처럼 어떤 과정일 수도 있으며 음식이나 재료를 다루는 이의 철학이나 신념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기본을 이해하고 저자가 발견한 최고의 맛들로 시선을 돌려보면 평범해 보이는 굴 하나가, 뒷다리 햄 한조각이 뭐가 그렇게 최고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고의 맛을 만나고 나면 책의 뒷부분에서는
음식과 관련된 짧은 에피소드와 예로부터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던 음식들에 관한 기록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약간 아쉬운데,
너무 잡지 기사처럼 글을 썼다고나 할까. 좀 더 심층적이고 밀도 있는 인문학적 글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 그래도 저자의 바람난
맛을 찾는 여행이 이걸로 끝은 아닐테니, 본격적인 플레이버를 다루기 전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