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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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나는 고작 <올랜도> 한권만을 읽었을 뿐이다. <올랜도> 역시 난해하기는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근저에 깔려있는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고 보여진다. 참고로 <올랜도>는 350년에 걸쳐 남성과 여성을 오가며 불완전한 인간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올랜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완전함이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음으로써 이루어진다.

 

   한 남성이 울프에게 편지 한통을 쓰고 거기에 대한 답장을 바라고 있다.

 

당신 생각에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9페이지)

 

   작가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3년이 지나서야 하게된다. 이 점잖은 신사는 3년 뒤에 답장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엄청나게 신랄하고 엄청나게 긴 울프의 조목조목 따지는 답변을 읽어야만 했을텐데 질문 한번 잘못 했다가 이게 무슨 꼴인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울프가 살던 시대의 여성들이라면 핵사이다 같은 울프의 답변 하나하나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우선 울프는 편지를 보낸 남성처럼 어머니와 여자 형제의 희생을 바탕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옷과 음식을 향유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째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신같은 여성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전쟁을 막는데 일조를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과 경제적 독립 그리고 익명성과 무관심이 바탕이 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가 1939년이고 여성이 결혼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때가 고작 20여년 전이었음을 감안하면 울프가 여성의 교육과 경제적 자립에 그토록 성토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아무리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책의 제목인 '3기니'에서 기니는 영국의 옛 금화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책 속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큰 가치를 갖는 귀중한 돈을 의미한다. 1기니는 여성의 교육을 위한 기금 모금자에게, 1기니는 여성의 취업을 도와주는 협회에서 나온 기금 모금자에게, 그리고 나머지 1기는 울프에게 어떻게 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한 남성이 요구한 '평화 보존을 목표로 둔 정책에 헌신하는 협회'에 기부한다. 울프는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귀중한 돈인 이 3기니의 기부를 위한 조건들을 나열하고 요구함으로써 남성의 위 질문에 대한 기나긴 답변을 마치게 된다.

 

   이 책은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그 엄청난 필력과 작품의 매력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 생각에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하여 풀어내는 당시 시대가 가지고 있던 남녀 차별의 부당함과 여성 지위의 향상에 대한 호소, 그리고 여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거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항거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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