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방치해놓은 과일 등에 달라붙어 있던 초파리떼를 보고 휘휘 손을 젓거나 인상을 써본 사람들이라면 도대체 이런 애들이 세상에 무슨 필요가 있는지 한번쯤 불평을 쏟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딘가에도 전혀 도움이 될 법하지 않은 하찮아 보이는 초파리들이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주인공이라고? 말도 안돼!

 

   사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초파리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실험동물로 살아온 존재였다. 과학을 위한 실험동물은 그저 생쥐 같은 설치류나 작은 포유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체 시계의 비밀인 피리어드 유전자와 타임리스 유전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발견이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초파리 덕분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은 바로 그 주인공인 초파리에 대한 일종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한다. 이 책은 나같은 과알못 독자들에게 딱 알맞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공식도 없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학적인 문구도 없다. 간혹 어려운 유전자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에도 이해하기 쉬운 예로 바꾸어 설명함으로써 학창 시절의 과학 선생님들을 갑자기 원망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촌철살인이 버무러진 재미있는 소설처럼 생각된다.

 

   작은 크기와 까다롭지 않은 생활 습성을 지닌 초파리는 실험실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데다가 번식력도 뛰아나고 수명도 50여일 정도라 여러 세대를 거쳐야 하는 유전학적 실험에 최적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썩어가는 바나나 한조각으로 초파리 200마리가 2주 정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정도로 경제적이다. 이로써 초파리는 단번에 실험실의 수퍼스타로 등극한다. 또한 초파리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유전법칙이나 진화론 등이 가지고 있던 유전학적 몽상이 가져다 준 혼란스런 상황을 검증 가능한 물리적 환경으로 인도한 실험적 증거의 토대를 세운 주인공이 된다. 초파리가 나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학 고전을 리뷰 형식으로 소개한 책인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를 읽고 선택한 첫번째 책인데, 아..정말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을 위해 신경 많이 써주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책, 진화생물학자와 과학 비평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소설가 같은 필력이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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