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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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전작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인상깊게 읽은터라 아주 다른 장르처럼 보이는 이 소설도 보자마자 호기심 상승! 게다가 좀비라니!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응?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좀비로 생각되는 해골이나 붙박이망령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좀비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세상이 '최후의 밤' 이후 해골과 붙박이망령들에 의해 점령되고 황폐된 이후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책을 읽을수록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나 마르셀 서루의 <먼 북쪽>이 떠오르는 그런 작품이다.

 

   '최후의 밤'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해골로 변해버리고 해골에게 물린 자들 역시 왜 해골이 되어버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되었다. 이야기는 마크 스피츠라는 소설 전체의 시점을 책임지는 인물이 어렸을 때 삼촌집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마크 스피츠를 비롯 '최후의 밤'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버펄로'라는 재건조직의 지휘 아래 해골들을 특정 지역에서 완전히 청소시키는 임무에 투입된다. 그 첫번째 장소로 뉴욕 맨해튼이 선정되고 그 곳에는 장벽이 설치되어 '제1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전문적인 군인들로 조직되어 있는 해병대가 일차로 남아있는 해골들을 소탕하고 나면 마크 스피츠가 소속되어 있는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수색대가 미처 해병대가 처치하지 못한 해골들과 붙박이망령들을 해치우고 뒤이어 시체수거원들이 시체를 수거하여 소각대에 넘겨주고 소각대가 마지막으로 그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으로 분업화되어있다.

 

   소설은, 민간인 수색대에 속해있는 마크 스피츠가 '최후의 밤' 이후 보낸 수많은 금,토,일 중 드디어 제1구역에 입성하여 재건의 희망이 어렴풋이 보이던 어느 금,토,일에 있었던 일들과 과거에 대한 그의 무작위적인 기억의 편린들과 회상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대체 '최후의 밤'에 어떤 일이 있었고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따라잡기가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야기 혹은 장면들로부터 작가가 의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삼촌이 살던 뉴욕에 오기를 희망했으나 결국 폐허로 자신이 동경했던 뉴욕의 모습을 더 이상 지니지 않은 이 시점에 뉴욕에 발을 딛게 된 마크,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닌 마크 스피츠라 불리우게 된 이유에 대한 반복적인 물음과 대답. 왜 붙박이망령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들은 왜 그런 옹색하고 이상한 장소에서 붙박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논쟁들. '최후의 밤'으로부터 살아남았지만 결국은 자살하는 사람들. 재건을 진두지휘한다는 '버펄로'의 허상. 결국은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는 남은자들의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어딘가를 향해 장벽이 필요없어지는 그날까지 싸우려는 사람들. 정말이지 사람이란, 이런 절망적인 종말의 순간에도, 기댈만한 희미한 희망마저 찾아볼 수 없는 절대적 절망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존재인가보다. 마크 스피츠가 또 다시 찾게 될 제1구역은 어디가 될까. 책장을 덮으면서 조용히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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