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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로마는 살아있다. 서로마가 멸망한지는 거의 1500년 전이고 그보다 천여년 더 수명이 길었던 동로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벌써 500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로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로마를 기록한 책들을 읽고 로마를 배경으로 한 다큐와 영화를 보고 유럽을 여행하면서 로마를 현재의 삶 속으로 불러오는 것일까. 그저 재미있어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들의 유산이 대단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런 것도 충분히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은 로마의 탄생과 번영 그리고 멸망의 역사가 그 이후에도 고스란히 새로운 역사에 투영되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로마를 통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우리의 운명을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책 본문 p349
이 책은 저자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건명원에 했던 강의를 출판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인지 흔히 역사에 저자의 해석과 통찰이 들어갈 때 독자가 겪게 되는 가독성의 문제가 전혀 없다. 내용은 술술 읽히고 기승전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이 분명하며 문장 또한 간결하고 깔끔하다.
역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던 제국 혹은 나라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로마 이전에도 최초의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해 발전된 문명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그저 문명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잠깐씩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왜 로마의 문명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저자는 그 이유가 로마의 관용과 영리함 그리고 행운에 있다고 말한다. 로마는 그 전까지 있었던 모든 문명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세운 것이 아니라 이미 탄탄하게 서 있는 과거 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채 문명의 이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그들의 유산을 상속받고 더 멀리, 더 높이 보는 시야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종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또한 사회가 돌아가게끔 하는 훌륭한 시스템, 인프라, 전술 덕분에 회복 탄력성이 좋았다.
그렇다면 로마는 왜 망했을까. 그것은 이미 말했던 번영의 이유를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번영의 당연한 결과인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로마를 그토록 잘 돌아가게 했던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었으며 제국으로의 탈바꿈 이후 후계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저자는 그들이 너무나 성공가도만을 달렸기에 과거의 번성했던 로마에만 집착한 채 멸망하는 순간까지 멸망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을 꼽는다. 로마는 유럽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지금의 유럽은 로마를 정복한 이민족들로 이루어져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당당한 후계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누가 로마 다음의 역사를 쓸 것인가'.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 온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보면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고 이제 인류는 우주로 눈길을 돌린다. 하지만 로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서로마가 망한 후 기나긴 천년간의 중세 암흑기가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문명과 시스템이 파괴되고 암흑 속에 갇혔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멸망한 제국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고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예견하고 상상하고 그려낸다. 그것이 지금 21세기에 로마를 이야기하고 로마에서 답을 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