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그 지적 유혹 - 책 속 음식에 숨겨진 이야기
정소영 지음 / 니케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 한편 한편 음미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만 할 것이다. 17편의 작품 속에 의미있게 등장하는 음식들 하나하나의 맛을 이토록 지적이고 섬세하게 다루는 책이 또 있을까. 17편 중 내가 읽은 작품은 8편, 그 8편 중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맛의 이미지를 여전히 선명하고 강렬하게 기억하는 작품은 <허삼관 매혈기>와 최근에 읽은 <시녀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과 아직 읽어보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은 나의 독서 목록에 올려놓는다.

 

나는 많은 책 속 인물들을 그들이 먹은 음식으로 기억한다...(중략) 음식은 책 속 인물들의 심리 상태, 성격, 그들이 처한 환경 등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가 하는 일상적 행위 중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가장 잘 투영되는 행위이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라는 작품 속 닉과 에이미는 부부이지만 에이미는 뼈속까지 중산층 뉴요커이고 닉은 시골 미주리 출신이다. 뉴욕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던 에이미는 닉과 미주리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만난 이웃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집들이 파티에 온 이웃들이 만들어 온 음식은 크림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데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고 심지어 플라스틱 용기는 재활용된다. 에이미는 자신이 이런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혐오스럽다. 미주리는 팬케이크의 고장이고 미주리 출신인 닉은 팬케이크를 좋아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섬세하고 우아하고 만드는데 팬케이크보다 정성이 요구되는 크레페를 좋아한다. 미주리에 와서도 팬케이크 대신 줄곧 크레페만 만든다는 것은 미주리의 생활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에이미의 단호함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는 시녀가 버터를 먹지 않고 몸에 바르는 행위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읽으면서는 영국음식이 처음부터 맛이 없었던 것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과 서로 음식을 나누는 행위에 담긴 메타포를 찾게끔 도와준다.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의 게이코에게 먹는다는 건 생존을 위한 음식을 먹는 것일 뿐, 문화를 위한 요리가 아니라는 것,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의 매혈을 하고 먹는 황주와 돼지 간 볶음 한 접시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등,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작가들이 숨겨 놓은 지적 장치들을 보물 찾기 하듯 담아내었다. 일종의 책 속 먹방인 셈인데, 그저 입 속 침샘을 자극하는 그런 먹방이 아니라 지적인 허기를 맛깔나게 채워주는 음식들이 가득한 메뉴판인 셈이다. 17가지의 작품들을 다 맛보기 위해서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할 것이다, 작가가 한 상 가득 차려놓은 만찬 뿐만 아니라 17권의 책들 역시 탐하게 될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