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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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혁 작가의 장편 소설은 처음이다. 단편집 두 권, 에세이 한 권, 이렇게 읽은 것 같은데 그의 작품은 엄청나게 재미있다거나 거창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늘 넘치는 상상력에 이끌려 읽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거침이 없는 입담 역시 매력적이다. 흔히 소설가라고 하면 이야기를 구상하기 위한 고뇌가 연상되기 마련인데, 김중혁 작가님의 이야기는 본인으로서는 억울할지 모르겠으나, 작가로서의 고뇌 따위는 없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이야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나는 농담이다>라는 장편에서는 그 점을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여럿이긴 한데,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송우영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사실 그의 정식 직업은 컴퓨터 A/S 기사이지만 저녁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한다. 그가 무대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거침없는 19금 개그와 농담들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지극히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그의 말들을 따라가느라 눈과 머리와 마음이 바쁘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인지 쉽게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계속 읽다보니 평소 팟캐스트 등에서 듣던 작가의 익숙한 목소리 덕분인지, 후반부부터는 작가가 직접 무대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에게는 어머니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즉 아버지가 다른 형이 하나 있는데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품에서 한번도 만난적 없는 그 형에게 쓴 부치지 않은 편지 12통을 발견하면서 그는 형에게 편지를 전달해주기로 결심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우주 정거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 한 우주 비행사가 마지막으로 관제 센터에 남기는 대화로 이루어져있다. 그가 바로 송우영이 찾는 형, 이일영인데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한 송우영은 전하지 못한 어머니의 편지를 결국 이일영의 여자친구인 강차연에게 전달하게 된다. 이일영이 우주에서 홀로 말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영화 '그래비티'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일영을 찾으러 온 송우영에게 이일영의 삼촌이 하는 말이 있다. '이일영과 너는 완전히 남남이다. 당신 엄마는 배가 양쪽으로 분리돼 있어서 왼쪽 배에서 당신이 나고, 오른쪽 배에서 우리 일영이가 태어났다고. 그러니 형제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송우영의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말이었겠지만, 사실 둘은 정말 닮은 점이 없어 보인다. 웃지도 울기도 애매한 19금 멘트를 마구 쏟아내는 송우영과 우주 비행사를 꿈꾸며 오로지 그 목표만을 위해 살아온 이일영은 아무리봐도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들을 이어주는 건 시덥지 않은 '농담'이다. 송우영은 평생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자신은 농담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늘 무대에서 농담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야 하는 코미디언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이일영이 생각해 낸 최후의 메시지 역시 농담이다. '우주인들끼리 하는 농담이나 하면서 소멸되는 것도 괜찮겠다'라면서 생의 마지막 기억을 차지한 사람이 자신보다 농담을 잘하는 동생인 것이다. 이야기는 갑자기 끝난다. 기승전결, 딱 맞아 떨어지는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허무할지도 모르겠으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한편을 다 듣고 박수까지 쳐줬더니, "아, 지금까지 농담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유쾌함이 있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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