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커트 보니것의 작품을 한번도 제대로 정독해보지 않은 나로서도 보니것은 냉소와 블랙유머로 단단히 무장한 작가로 기억된다. 이번에 출간된 단편 25편이 묶인 소설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그에 대한 이런 기억을 더 견고하게 해주는 작품이 되었다. 25편을 모두 읽어낸 지금,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이야기는 뒤죽박죽 섞이고 만다. 보니것의 작품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블랙유머는 때로는 인간의 위선을 풍자하고 때로는 인류가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을 조롱하기도 하며, 인류가 못박아놓은 도덕의 개념을 가차없이 뭉개버리기도 한다. 특히 이 단편소설집에는 직,간접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배경이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꽤 있는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제5도살장>의 직접적 소재가 되는 제2차 세게댸전 당시의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겪은 후 반전작가가 된 그의 특성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야기는 술술 읽어내려가기에 쉽지 않을 뿐더러 가끔은 그의 유머가 어리둥절 할 때도 있다. 어떤 작품은 이야기가 분명 끝났으나 예상에서 한참을 벗어난 기묘한 결말들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만든다. 수록된 대부분의 단편이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임을 감안할 때 당시 그가 살았던 시대와 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아마 이 기묘함이 더 친숙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품은 악몽 같다가도 어떤 작품들에는 금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전쟁 포로들을 체스판의 말로 두고 피스들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한명씩 처형을 당하게 하는 룰을 설정해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이는 <모두 왕의 말들>과 소련과 미국의 치열했던 우주전쟁 시대를 두 아버지의 담담한 편지로 풀어낸 <유인 미사일>이다. 그의 시니컬한 블랙유머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나는 아직까지는 읽고나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그런 작품이 더 좋은가보다. 틀에 박힌 모든 것이 싫증나고 지루해질 때, '보니것식 휴머니즘'의 실체가 담긴 그의 단편들을 주저없이 고르는 당신은 진정한 독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