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눈앞의 현실 - 엇갈리고 교차하는 인간의 욕망과 배반에 대하여
탕누어 지음, 김영문 옮김 / 378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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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렵게 어렵게 다 읽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읽으려던 시도 자체가 과욕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래 전부터 모든 국가에서는 국사를 기록하는 사관을 두고 있었고 각국의 국사를 부르는 명칭이 있었는데, 노나라는 자신들의 국사를 '춘추'라 이름하였다. 그 노나라의 200년 국사를 공자가 개인적으로 개편하여 <춘추>라는 저서가 탄생하였는데, <춘추>를 보충하고 해석한 것이 <좌전>이고, <좌전> 똑바로 읽기를 자청한 것이 탕누이의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니 <춘추>나 <좌전>은 물론 읽으려고 시도한 적도 없는데다 노나라의 역사도 알지 못하는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했다니, 만용이었음에 틀림없다.

 

<좌전>은 세월의 뱃전에 새긴 <춘추>의 흔적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시간 순서와 구체적인 디테일과 인간의 이야기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의 서술을 회복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좌전>을, 탕누어의 거침없는 필력을 빌어 어렴풋이라도 기억 한 곳에 담아둘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공자의 <춘추> 강의를 들은 이가 열심히 해석하고 풀이한 강의 해설서(좌전)를 쪽집게 강사에 의해 다시 전해 듣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특이한 점은 탕누어가 공자의 <춘추>보다 오히려 누가 기록한지도 명확하지 않은(좌구명일 가능성이 많지만) <좌전>을 더 높이 산다는 것이다. <좌전>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문학에 더 가깝다는 언급을 하면서 <좌전> 저자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탕누어는 <좌전>이 없었더라면 이 작은 나라의 국사가 현재까지 전해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단순히 노나라의 역사 기록물에 불과했던 '춘추'라는 명칭이 한 시대를 가리키고 분할하는 명칭으로 사용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탕누어는 이렇게 <좌전>을 한껏 치켜세운 다음에 본격적으로 <좌전>에 기록된 굵직한 사건들을 짚어가는데 사건 중심으로 풀어가다보니, 200년에 걸친 노나라의 전체 역사가 큰 그림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저자가 너무 박식하다 보니, 이곳저곳 다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거나 차용하면서 잠깐씩 의식의 샛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빈번하여 한길 따라잡기도 어려운 독자로서는 힘든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좌전> 속 에피소드들이 의외로 재미있는 부분이 꽤 있어 인내에 대한 보상도 나름 챙길 수 있으니,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읽어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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