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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전쟁 378~1515
찰스 오만 지음, 안유정 옮김, 홍용진 감수 / 필요한책 / 2018년 9월
평점 :
중세의 전쟁이라는 제목에서 '전쟁사'를 내 맘대로 연상했다. 그래서 중세에 있었던 굵직한 전쟁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전쟁에서 각 나라 혹은 특정 민족이 지녔던 전략이나 전술, 사용된 무기, 그리고 그들 군대의 조직과 특성들에 관한 요약정리본이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중세라 하면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 즉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를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는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가 있었던 378년부터 1515년 마리냐노 전투까지를 다루고 있다.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그 전까지 약 300년동안 로마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이었던 로마군단인 레기오 보병대의 전력과 효용성이 약화되는 시점에 동로마제국과 고트족간에 일어난 전쟁으로 고트족의 기병대가 동로마제국의 보병대를 쓸어버림으로써 보병대에서 기병대로의 이행이 시작되는 중요한 전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기병대에 눌려 하찮은 존재가 된 보병이 다시 살아난 것은 그로부터 천여년이 지난 14세기에 등장한 강력한 스위스군대에서인데 그렇게 종횡무진 절대 패할 것 같지 않던 스위스 군대가 프랑스의 포병 공격에 무너졌던 전투가 바로 1515년의 마리냐노 전투이다. 이를 마지막으로 저자는 전쟁의 기술과 전술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되면서 중세는 막을 내린 것으로 간주한 듯 하다.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교훈을 얻은 비잔티움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시작으로 과거 로마의 낡은 전쟁 기술과 이론을 포기하고 기병대를 중심으로 군대를 재편성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비잔티움 제국을 제외한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봉건시대의 시작으로 전략이나 지도자의 지휘능력보다는 무기의 탁월함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정도라서 '훌륭한 전투'라고 불릴만한 전쟁이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일반 역사 속에서는 십자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만큼은 십자군은 완전히 무시되도 좋을만큼 그 영향력이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이후 같은 동족이나 이웃으로 이루어져 탁월한 결속력과 기동력을 가진 스위스군이 단일무기를 가지고 난공불락의 보병대를 가지고 큰 승리를 거두는 동안, 스위스군대를 상대해야만 했던 다른 유럽 국가들은 기병이 우월했던 시기가 막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기병대를 고수함으로써 그로부터 한세기 이상을 스위스군대에게 명성을 내어주게 된다.
밀덕이 아니라면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될 지 모르나 군사적 사료가 많지 않고 체계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 시대의 문학작품이나 역사가들이 기술한 짤막한 글들을 통해, 그리고 발견된 그림이나 무덤에서 발굴한 잔해를 통해 겨우 짐작정도만 할 수 있는 시기의 군사적 유물들을 이렇게 정리해 놓은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가독성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역사적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을 대입해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