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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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시간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시간을 왜곡시켜 과거의 일이 현재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타임워프, 시간 여행을 하는 타임슬립,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리프, 동일한 시간을 계속 반복하는 즉 특정 시간 속에 갇혀있는 타임루프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가 대부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제외한다면 이 책은 제법 신선한 소재와 스토리를 지닌 작품이다. 

   톰은 1581년 3월3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 없이 평범하게 자랐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본인의 신체의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엄청나게 느리게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끊임없이 노화해 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속도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나이가 들지 않게 보일만한 수준이다. 그래서 현재 439살이지만 이력서에는 41살로 기록한다. 시간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는 이들에게는 한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음식과 음악과 샴페인과 10월에 누리기 힘든 화창한 오후는 마음껏 사랑해도 돼. 폭포의 황홀한 경치와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건 절대 안돼. 알아듣겠어? 사람들에게 집착하지마. 상대가 누구든 마음을 열어 주지도 말고. 그렇지 않으면 미쳐 가게 될거야. 아주 천천히..

   

   바로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만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빠르게 늙어가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일을 겪는 건 그닥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보통 사람보다 늦게 나이들어가는 한 남자가 보통 여자를 사랑하는 로맨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작가를 그 정도로 쉽게 봐서는 안된다.

   16세기 유럽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그것도 늙지 않는 젊은 외모는 악마로 몰리고 그런 아들을 낳은 엄마는 마녀가 된다. 겨우 살아남아 신분을 숨긴 채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가는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깨지지 않는 사이클 안에 갇'힌 것처럼 기진맥진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정착했던 곳을 떠나 또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도망자 신세만으로도 버거운데, 마녀재판으로 엄마를 죽게 했던 사람이 여전히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처럼 다른 신체 시간을 가진 사람들의 소사이어티에 의해 죽음을 모면하게 되는데, 이 소사이어티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와 판타지의 경계 안으로 들어간다.

 

우린 역사의 보이지 않는 실들이야.

 

처음 들었을 때는 좋았지만 이제는 스스로 귀를 뜯어 버리고 싶을만큼 진절머리 나는 후렴을 가진 노래 속에 갇혀버린 기분이랄까.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였다....나는 이렇게 사는게 싫었다. 죽을만큼 외로웠기 때문이다. 이건 보통 외로움과 차원이 다르다. 사막 바람처럼 스며드는 그런 외로움이었다. 아는 사람들을 속속 잃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 자신마저 잃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들과 함께 했을 때의 나를 잃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시간을 멈추고 싶어하던 톰은 결국 깨닫는다. 시간을 지배자로 생각하지 않을 때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야 할 현재에 집중할 때, 비로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말이 아쉽기는 하다. 앞에 뿌려 놓은 떡밥 수거는 좀 천천히 해도 되었을법한데 너무 급하게 마무리하려다 보니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순식간에 급마무리되고 로맨스 소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저런 공상 속에 빠진다. 나 혼자 400년을 살고 싶진 않지만,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게 되면 정말 실감나게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셰익스피어 초상화가 셰익스피어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도 알려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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