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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모험 - 표상문화론 강의
고바야시 야스오 지음, 이철호 옮김 / 광문각 / 2018년 9월
평점 :
삽입된 권두 삽화를 비롯 책 속의 대부분의 그림들은 내가 실제로 직접 보았거나 알고 있는 그림들이었음에도, 각 그림들의 장면들이 무엇을 그린 것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번만 읽고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20년 이상을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해온 노장 교수의 깊이 있는 강의를 따라가기를 애초에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회화의 모험'은 마치 머나먼 우주의 블랙홀 속을 더듬어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끝까지 읽은 후의 뿌듯함이라고 한다면 표상문화론의 관점에서 보는 회화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회화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그 시작점을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상하려고 했던 지오토로 명시하고, 그 마지막을 화가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가는, 그리지 않는 화가였던 앤디 워홀로 지정하는데, 여기서 마지막이라 함은 회화의 끝이 아니라, 앤디 워홀 이후의 바스키아를 회화 역사의 시작점이었던 지오토의 이미지와 겹쳐 보면서 다시금 새로운 회화 역사의 사이클의 시작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앤디 워홀을 마지막으로 두고 있다. 지오토에서 앤디 워홀까지 약 700년의 시간의 단층에서 회화가 불연속적으로 한번씩 도약하거나 절단하는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를 선정하여 그들의 대표 작품을 통해 표상으로서의 회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재의 표상'이라는 관점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거울 속에 비친 왕과 왕비를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이 아니라, 왕녀를 모델로 한 그림이라는 해석과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관람자의 시선을 맞받아치는 올랭피아의 '영웅적 위엄'을 '제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화해하기 어려운 단절'과 연관시키는 부분, 그리고 드가의 '압생트'에서 나란히 무심하게 같이 앉아있는 여자와 남자에 대한 추리소설 같은 사선적 시각을 예리하게 잡아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40여년의 경험과 지식의 집약체인 이 저서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으나, 두고두고 참고하면서 '회화의 모험'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