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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평점 :
그동안 열심히 유럽사를 탐독해 오면서도 '영제국'에 관한 역사를 유럽과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영국과 영국이 지배했던 제국의 역사를 영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식민지배의 역사를 식민지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제국주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될 위험이 있으나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집필 의도가 몇백년에 걸친 영제국의 근본 뿌리를 더듬고 그들이 제국을 형성하고 제국의 사람들을 대하던 태도가 어떤 식으로 다른 유럽제국들과 차별화 되었고 어떠한 복합적인 결과들을 낳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술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제국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영제국 자체에 대한 역사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니 독자 역시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좋을 듯 하다.
섬나라인 영국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해적, 해군, 의회, 산업혁명, 기차 등이지 않을까.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의 상선들이 그들의 식민지에서 실어나르던 보물들을 약탈하여 국가의 재정을 불리는데 이용했다는 엘리자베스1세와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이야기는 유명한데, 바로 그 스페인 상인과 상선들을 노략질하던 해적들이 나중에 영국을 최고의 국가로 만들어준 영국 해군의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명실공히 최고의 해상력을 가진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유무역'이 자국 뿐 아니라 전 세계와 인류 모두에게 긍정적인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개방 경제를 추구하게 된다. 이는 영국이 특히 영제국을 비롯한 세계에 대해 그동안 취해왔던 보호무역 조치를 철회하고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결국 자유 무역의 원칙은 전 세계를 하나로 협력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영국이 당시 너무나 당연시 되던 노예무역의 폐지에 앞장섰다는 것과 자신들의 의회 민주주의와 교육제도, 법치 제도 등의 정신을 식민지에 실현시키고자 했고 자국에 발전을 가져왔던 제도와 기술들을 제국에게도 아낌없이 전파하려고 했다는 점은 제국주의나 식민 지배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제국을 '덜 사악한 제국'으로 만들어주는 '제국의 품격'이 아니었을까. 제1,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시대의 영국이 식민지와 영연방 시민들에 대해 취했던 인종 차별, 인도의 독립 투쟁 과정에서 쌍방이 겪게 되는 대학살의 처참한 기억들은 여전히 영제국의 역사에서 그림자로 남아있지만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전 세계의 4분의 1을 자신들의 제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데에는 아마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위대한 이념을 통치 가치의 중심에 둔 덕분이 아니었을까. 영국과 제국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살펴보았으니, 저자의 다음 책으로 부정적인 부분 역시 다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