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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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소설은 그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같다고 한 건 여전히 사건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점이고, 다르다는 건 이번 이야기는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통상적인 추리소설의 플롯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살인의 문을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관한 기나긴 추적의 궤도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으로 사용된 '살인의 문'이라는 표현은 책의 말미에 가서야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살인의 문이라는 제목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을 나 같은 독자들은 끝까지 짐작도 못한 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동기가 있다고 반드시 살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계기가 없으면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죠
그런 문은 영원이 지나가지 않는 게 좋아요

   인간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는 경우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특히 그런 경험을 어렸을 때 겪게 되면 무의식 한편에 어떤 트라우마 같은 형태로 자리잡으면서 그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특정 이미지들이 순간순간 의식을 헤집고 올라오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소설 속 화자인 다지마는 초등학교 때 할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죽음이라는 걸 인식하게 된 후 20여년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살의'의 충동에 시달리거나 '살인'을 상상하게 되는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 때부터 늘 그의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같은 학교 친구였던 구라모치 때문인데, 매번 구라모치가 자신의 인생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 새 그의 언변과 속임수에 넘어가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다지마를 보고 있는 독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렇게 구라모치로 인해 매번 파멸로 가는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도 다시 그 계단을 내려오려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채 그저 구라모치의 살인을 꿈꾸며 살인의 문 언저리에서 맴도는 주인공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약함 역시 인간 본성 중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이제 나는 살인의 문을 넘어선 것일까

   20여년 동안 다지마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써도 알 수 없었던 의문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살의를 느낀다. 그동안 살인을 위한 동기는 차고도 넘쳤지만 계기가 없었던 그에게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다지마는 과연 살인의 문을 넘어선 것일까? 작가는 그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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