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나카 이치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8월
평점 :
"여든 살(사실은 예순 일곱 살)의 위대한 갈릴레오는 지구의 운동을 발견했다는 죄로 이단 심문소의 눈 밖에 나 옥고를 치렀다. 무지가 권력으로 무장할 때만큼 인간의 본성이 추락하는 경우는 없다"
갈릴레오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형을 받았고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다는 일화는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라는 설도 떠돌았다. 이 책은 정말 400년 전, 그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최대한 증거에 입각해 사실을 전달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계몽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18세기, 나폴레옹은 계몽주의에 경도되어 과학을 부정하고 신앙을 권력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던 가톨릭 교회의 타락과 거짓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갈릴레오의 재판 기록을 바티칸으로부터 약탈하게 된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기록된 재판 기록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폴레옹은 실각하게 되고 갈릴레오의 재판 기록은 많은 부분이 소실된다. 바티칸에서는 약탈당한 갈릴레오의 재판 기록의 반환을 끈질기게 프랑스에 요구하는데, 도대체 바티칸은 왜 그렇게 그 재판의 기록을 회수하려고 했을까.
저자는 본격적인 재판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갈릴레오가 받은 재판이 종교 재판이었음을 강조한다. 당시의 종교재판은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재판이 아니라, 이미 피의자는 이단으로 고발당하는 즉시 유죄로 인정되며 이단 혐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품은 사상을 검증하고 다시는 이단적 사상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장소였다. 즉 피고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교회는 타락한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종교 재판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많은 문서가 소실되었지만 저자는 남아있는 문서를 참고하여 400년 전,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최대한 되살려낸다. 1632년에 시작된 심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615년에 있었던 갈릴레오가 이단을 신봉하고 있다는 니콜로 로리니의 고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고발에 대해 1616년 추기경이 선고했던 통고문을 정확히 이해해야 1632년에서 33년에 걸쳐 진행된 갈릴레오의 재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의도는 갈릴레오나 가톨릭 중 어느 한쪽을 극단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비록 가톨릭이 갈릴레오를 이단 심문소 재판정에 세우기는 했지만 그의 지식과 명성을 존중하여 갈릴레오가 죄를 인정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보면 강렬한 대결구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갈릴레오의 고집으로 심문은 3차까지 끌게 되는데, 심문을 맡았던 추기경 등이 법정 밖에서 갈릴레오를 설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서도 가톨릭은 나름 갈릴레오의 가벼운 선고를 위해 노력한 듯 보인다. 더군다나 이단 포기 선서를 한 다음 날 갈릴레오는 바로 석방되어 감옥이 아닌 가택 연금형으로 감형되기까지 한다. 물론 가톨릭이 성서를 핑계로 과학의 발전을 탄압한 것은 사실이지만 갈릴레오의 재판만큼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약간은 억울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