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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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커밍아웃을 한다. 회식 자리에서 파도타기를 강요하던 부장도 알고보면 개인주의자, 하루라도 친구들과 요란스런 파티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옆자리 동료도 자신은 알고보니 개인주의자, 실은 나도 개인주의자! 이 말은 인간이란 '개인주의자'의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혼자 있는게 즐겁고 혼자 하는 일을 더 잘하고 그냥 혼자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굴러갈 수 없는 법.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유명한 명제가 왜 등장했겠는가. 개인주의가 좋긴 하지만 일정 부분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바로 이 사실이 필연적으로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낳는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판사님의 소설 <미스 함무라비>의 한 구절이 생각나 다시 찾아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에 남아있는 한 조각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지키는 마지막 존엄성에 대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나쁘거나 추해질 수 있다는 자각에 대하여,
이것조차 잃고 나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겠는가"
<미스 함무라비, p311>

 

   위 인용문은 <개인주의자 선언>을 관통하는 주제와 어찌보면 일맥 상통한다. 무조건적인 집단주의의 강요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 자유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일이 잘못되면 술탓, 남탓, 사회탓, 나라탓이다. 자신의 내면에는 마치 자유의지란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하는 양아치들이다. 사실은 이 책은 내가 개인주의자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자임을 천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치열하게 싸우던 변호사와 검사가 일곱 살 아이를 사건의 증인으로 불렀을 때는 모두 법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준비했던 질문을 꿀걱 삼키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했던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조정에서 양측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조정인에 관한 이야기도,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에 관한 단상도, 결국엔 모두 '자신의 비합리성'을 자각해야하는 '합리적 개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곳저곳 칼럼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서 다시 다듬어 출판한 책이라 약간의 산만함이 있으나, 다 읽고 나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고 말해주는 판사님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퍽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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