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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천재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을 탄생시킨 두 남자의 숙명적 대결
제이크 모리세이 지음, 김난령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비범하고 뛰어난 천재를 의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범한 인물이 가진 독창성을 보는 순간
놀라서 몸을 움츠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르네상스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천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카라바조 같은 거장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조토, 마사초, 프라 안젤리코, 도나텔로, 티치아노, 베르니니 등 이번 여행에서 만나야 할 예술가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로마에서 4일을 보내고 이탈리아 남부 3박4일을 유로자전거나라 투어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가 화제에 올랐다. 당연히 발다키노를 제작했다고 알려진 베르니니와 그의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가이드님이 '보로미니'라는 이름을 이야기 하시는데,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성 베드로 성당의 그 발다키노가, 그리고 성 베드로 성당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라는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디자인 천재>라는 바로 이 책을 추천해 주셨다.
이미 절판된 책이었는데 다행히 중고 주문이 가능하여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 하지만 그 둘의 성격과 성향은 판이하게 달랐고 시대를 살아가는 요령과 처세의 차이가 그 둘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요즘말로 하자면 사회성이 결여되고 처세술에 능하지 않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책은 그 두 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누가 옳고 어느 누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건축에 있어서 독창성과 전문성은 보로미니가 베르니니보다 한 수 위라고 보여진다. 베르니니는 건축 보다는 조각과 회화에서 탁월하였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기교는 당시 로마와 세상이 원하던 것과 잘 맞아 떨어졌으며 외향적이고 수완이 좋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신임을 얻게 되면서 성 베드로 성당의 공식 주임이었던 마데르노를 제치고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마데르노의 제자이자 그를 존경했던 보로미니로서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베르니니가 마음에 들리가 없었지만 운명은 보로미니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성당에서 함께 일했던 9년의 시간을 포함하여 일생동안 경쟁자로 살아가게 만든다.
이 책을 여행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보로미니가 묻힌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그의 천재성을 볼 수 있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나 산 필리포 네리 성당의 오라토리 같은 곳을 둘러볼 짬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보나 광장의 4대강 분수를 보면서 베르니니의 위대함에만 감탄하지 않고 실제 그 아이디어를 내 사람은 보로미니였다는 것도 기억했으리라. 보로미니의 등장과 그의 불운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르니니의 업적과 천재성에 흠집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로마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보로미니가 남긴 유산도 있었음을 기억해 주는 것이 이 불운한 천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두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삶에 있어서나 일에 있어서나 서로 지극히 상반된 독특한 접근방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베르니니는 언제나 주위의 기대를 능가하면서 성공했고 보로미니는 그 기대에 도전함으로써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베르니니의 예술적 비전은 설득력 있고 감동을 주고 조숙하고 감상적이었다. 반면 보로미니의 감각은 개인적이고 직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청렴했다. 그들은 따로 그리고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