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지나가는 길 - An Inspector Morse Mystery 2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어딘가에 지나가는 말처럼 적었듯이 모스 경감 시리즈를 좋아하면서도 선뜻 리뷰를 적어 내려갈 수 없었던 것은, 이제까지 출간된 것들의 경우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다들 뭔가 하나씩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느낌에는 아마 사향 주머니라도 달고 다니는 듯이 어딜 가나 이성(異性)의 관심을 받는 주인공 캐릭터의 통속성에 대한 반감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이 작품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적어도 읽으면서 그 점을 크게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소설의 호흡이 길고 자세했기 때문에 비로소 키보드를 잡을 수 있었다. 71개나 되는 짧은 챕터 속에서, 구체적이진 않지만 납득할 수 있는 묘사 속에서 드디어 모스 이하 여러 캐릭터들이 실제 옥스포드에 살고 있는 인물들처럼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

흔히 모스 시리즈는 크로스워드 퍼즐에 비유된다. 지식인이 되려다 만 속물 모스는 정말 명석하지만 자신을 항상 과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작품은 어쩔수 없이 범죄의 재구성을 거듭하고, 그 과정은 마치 크로스워드 퍼즐을 맞춰 나가다가 솔루션이 없음을 깨닫고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 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고전적인 풀이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런 도식은 시리즈에 일관된 것이지만 이 장편에서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 현대 소설에서 매스컴 - 신문, TV, 라디오 등등 - 을 분위기 메이커나 사건의 정보 제공처로 써먹는 소설은 많지만, 신문의 독자투고란을 그 재구성에 참가시켜 스토리텔링에 써먹은 것은 정말 참신하고 대가다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모스 시리즈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그런 재구성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모스라는 캐릭터다. 가끔은 이자의 꼬장 내지는 삽질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의 이성 밝힘증으로 인해 사건의 핵심이 흐려지니 짜증도 난다. 마치 신문에 난 크로스워드를 풀려고 애쓰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만화를 보겠다고 그 면을 통째로 달라고 떼를 쓰는 느낌이랄까. 허나 그런 아들의 모습이 얄밉긴 해도 미울 수는 없는 법. 모스라는 캐릭터가 영국에서 셜록 홈즈에 맞먹는 인기를 얻은 이유는 그가 옥스포드 출신의 엘리트이면서도 소시민의 아집이나 소망, 결점 같은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덱스터의 영국 생활 묘사가 더없이 구체적인 것도 인기를 누리는 장점. 그는 거리 이름, 지형지물, 자동차, 심지어 모스가 TV보면서 맨날 마시는 술병 하나에도 구체적인 이름과 상표명을 적어 현실적인 분위기는 물론 친근함도 높인다. 이런 식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팔아먹는구나, 하고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이다. 영국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하, 나 여기 알아' 하는 즐거움이 있을 터이고, 가 보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세하게 달린 주석으로 인해 현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번역으로 추천할 만하다.

내용에 대해서 말하자면, 메인이 되는 범죄의 경우 어디선가에서 한번 보았던 수법이고 중간중간에 충분히 복선을 깔아 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으나 부수적인 수수께끼들의 경우 '정말 깬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들이 있었다. 나는 시인의 정체를 알았을 때 정말이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고, 결말에서 모스랑 즐거운 한때를 보낸 여인의 정체에 대해선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홉슨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클레어인 것 같다. 과연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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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1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클레어라고 생각했었는데, -_-a 그 시인의 정체가 정말 놀랍죠? ^^

물만두 2005-03-1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알수 있었는데요^^

Fithele 2005-03-1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아시고 나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으셨단 말입니까? 음 ... -_-a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되니까 발설할 수는 없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표현이 '맥거핀' 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