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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추적자
볼프강 에베르트 엮음, 정초일 옮김 / 푸른숲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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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 만화로, 책으로 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접해 본 적이 있었다. 이 책을 구입한 것은 그 시절 느꼈던 희미한 모험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주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보물을 추적하는 과정이나 도중의 일화는 부분적으로 나와 있었다. 보물 추적에 관한 흥미진진한 탐험기를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더구나 이 책은 서양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에, 서양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나처럼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독자가 근대 서양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의 보물 추적담을 그런대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질 좋은 종이를 사용해, 보다 선명한 보물과 유적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피렌체 다이아몬드 사진은 볼 만한 것이었다. 그토록 영롱한 빛을 가진 다이아몬드가 있다니……. 귀금속에 관한 관심이 적은 나였지만, 그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반면, 고급종이를 사용했기에, 그만큼 책이 비싸다. 이 책의 구입 여부는 순전히 본인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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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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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11월경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을 읽었다. 의사인 저자는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또 다른 삶’을 경험한다. 그 경험은 인간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의지’를 통해 새롭게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실존분석을 제창하고 로고테라피라는 정신분석의 한 분야를 창시한다.

이 책을 언급한 것은 운명도 이와 비슷하게 저자인 케르테스가 자신의 강제수용소 수용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지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사람은 회고록 형식을, 다른 한 사람은 소설 형식을 빌려 이를 표현했다. 두 사람 다, 나치 수용소라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극한 상황에서의 ‘실존’을 글에서 다루고 있다. 이들의 글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삶을 사는 것조차(산 다기 보다 그냥 있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인간을 경험한다.

저자는 15세 소년의 눈으로 ‘운명’을 전개한다. 그런데 운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회고록에 가까운 것 같다. 그것도 꽤 객관적인... 15세 소년의 눈은 청소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차분하다. 강제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경험조차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비정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만큼 케르케스는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철저하게 체득하고 인식했는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독일인과 그들의 행동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며 그곳에서 경험한 어떠한 사람이나 사건도 판단하기를 유보한다. 이런 작가의 시선으로 오히려 나는 ‘소년’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강제수용소를 만들고 유대인을 탄압한 독일인은 악하고, 아무 이유 없이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은 불쌍하다는 생각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저자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몸과 마음을 단순히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년의 육체와 생각이 어떤 한계선을 넘나들며 운명에 부대끼는 모습을 통해, 수용되었던 경험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암시해준다. 소년은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준 사람을 충분히 미워할 만한데, 곳곳에는 그런 모습보다 호기심 많고 사람, 자연을 긍정하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전쟁이 마치 스포츠인양, 전쟁상황을 생중계하고 사상자나 무기성능을 선수의 전적을 소개하듯, 수량화하여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흡사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어느 나라가 더 센 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고 죽이는 현실을 즐기고 있는 난,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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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혼 사마천
천퉁성 지음, 김은희. 이주노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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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중국 역사서인 사기를 지은 사람이 ‘사마천’이라고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나 또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역사수업 시간에 사마천이란 이름과 사기란 책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알고 있는 사실은 사마천이 사기를 지었다는 것과 ‘궁형(거세를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을 읽고자 하다, 사마천이란 인물을 보다 깊이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는 사마천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함에도, 사기를 비롯한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사마천의 흔적을 찾아 연결해 한편의 소설로 탄생시켰다. 저자는 열악한 조건이 내용의 빈곤함이나 사실성의 결여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쓴 것 같다. 특히 책 중간 중간에 사마천의 일화가 나오는데, 일화 중 많은 것이 허구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한 상상력이 아닌, 논리적 추리력으로 각색해 보여준다.

저자의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나라를 위해 충언을 하고도 억울하게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억울함을 승화하여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의 진면목도 볼 수 있었다. 두꺼운 책이지만, 역사소설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마천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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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기독교 (양장) 믿음의 글들 185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외 옮김 / 홍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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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제목 중 '순전한'이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다음은 C. S. 루이스란 사람이 '기독교 변증가'라는 겉표지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변증이란 분별하여 증명하다라는 뜻인데,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하기에, 저자를 기독교 변증가라고 소개하는지 궁금했다. 그것도 기독교의 순전함을 변증한다는데...

책을 읽고 난 후, 구체적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음이 시원해지고 가슴에 말로 형용 못할 확신과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걸 느꼈다. '아, 이래서 예수를 믿는구나'라고 깨달으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 책이 본래 불신자를 위한 책이건만, 오히려 나 같이 이미 믿고 있는 사람이 더 읽어 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확증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성경을 제외한 다른 어떤 책에도 이만큼 밑줄을 그어 본 적이 없었다. C. S. 루이스는 마치 인적이 드문 아프리카 오지를 인도하는 관광가이드처럼, 나에게 '기독교 변증'이란 길을 안내했다. 그 길을 처음 따른 나로선,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현장을 목격하여 경험할때마다 입을 크게 벌리며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어느 책이 이토록 나를 감동시켰는가? 소설보다 극적이고 영화보다 생생하다.

쉽지 않고 가볍지 않은, 그래서 거부감마저 들 수도 있는(특히 불신자들에게는) 기독교 변증에 관한 이야기지만, C. S. 루이스는 흡사 유치원 선생님처럼 알기 쉬운 예를 들어가며 구전 동화 낭독하듯 한다. 하나님께서는 C. S. 루이스에게 단순하고 일상적인 예에서 진리를 발견하는데 특별한 지혜를 주신 것 같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도 바울은 회심하여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듯이, C. S. 루이스는 무신론자에서 회심하여 글로 예수를 전하는 '회의자의 사도'가 되었다. C. S. 루이스는 예수를 믿지 않다가 믿었기에 어느 누구보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 C. S. 루이스를 왜 '회의자의 사도'라고 부르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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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한가운데 - 윈스턴 처칠 수상록
윈스턴 처칠 지음, 조원영 옮김 / 아침이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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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이다. 동시에 이 책에는 처칠이 인생을 철학적으로 음미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태풍의 눈은 태풍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데, 태풍 주변부와 달리 이곳은 고요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곳이다. 처칠은 어느 누구보다 폭풍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항상 폭풍의 한가운데 서서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결해 나갔다. 처칠은 그러한 과정과 그 속에서 얻었던 경험을 구수한 된장국을 끓이듯이 우려내고 있다.

보통 우리들이 정치인하면 떠올리는 것은 부정적 인상이다. 그런데 왜 그런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일까?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인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 때문일까? 처칠은 정치인에게는 땅딸막한 키, 큰 머리, 불룩한 배, 아니면 굵고 짧은 다리 등 부정적 인상이 따라 다니기 쉽다고 하는데, 이것은 시사만화를 통해 형성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상이 잘못됐다고 언론에 항의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자신만의 특징으로서 '모자'를 개발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처칠 특유의 낙천적 성격을 엿 볼 수 있다. 이런 처칠의 진솔한 고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배출했으면 하는 정치인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처칠이란 '정치인'을 '현존하는 최대의 영국인'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 영국인에게 묘한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처칠은 일생 중 적지 않은 부분을 군인인 동시에 종군기자로 살았다. 이 때에 경험하며 느꼈던 점을 때로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 주듯이, 때로는 선생님이 제자에게 인생이란 과목을 강의하듯 회상한다. 전쟁터에서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을 통해 전쟁의 실상을 말하며, 전쟁이 일어난 때는 다른 어느 때보다 '우연'이 고개를 들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록은 군 복무중인 나에게 어느 전쟁영화보다 실감나게 다가왔다.

책 후반부인 '오십 년 후의 세계'에서 처칠은 특유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무선 전화와 초고속 통신 수단의 개발, 합성식품(유전자 조작식품)의 개발, 새로운 에너지원 출현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 및 발전을 예견한다. 이러한 예견이 현대에 적용되는 것을 보니, 처칠의 예지에 탄복이 절로 나온다.

종반부에서는 처칠의 취미생활인 그림 그리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란 취미를 가지게 된 동기를 차근차근 말하며 단순하게 시작했던 그림 그리기란 취미가 나중에는 그에게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음을 고백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에게 그림 그리기의 참 맛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 가 싶다.

처칠의 글 곳곳에는 한 영국인으로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에 헌신한 그의 자취가 새겨져 있다. 또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즐긴 '호인'의 기질도 다분히 엿 보인다. 정치인, 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화가, 작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그의 일생은 단지 그의 명성만이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그'만의 개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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