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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 전10권 세트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여러 유명한 문인들은 이 책을 찬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찬사가 없었을지라도 '대하예술소설'이라는 장르가 낯설게 다가와 그 자리에서 서성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권을 덮으며 이 책은 '예술소설'이라는 명칭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다. 곱게 꿰매 놓여진 문장들은 그냥 소설에서 쓰여지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노래와 같이 운율은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소리로 읽으면 하나의 '판소리'가 될 듯도 싶다.
최명희의 문체는 한마디로 신들린 것이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매안 어느 뒷길에서 거멍골 밤길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이 나의 것이 되고...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강모와 강실이...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종손으로 태어났으나 그 짐을 너무나 무거워 했던 강모...그러나 그 짐은 그의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으로 더 무거워 지고 또 그 짐을 벗어버리겠다고 떠난 봉천...그러고도 벗어지지 않는 짐들. 그 속에서 하염없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도 연약해 미워지기까지 하는 강실이었다.
그 혼란 가운데 대나무 같이 버티어 서는 종부 효원. 그 혼란을 서서히 휘저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몸부림치는 거멍골 사람들.
'혼불'이라 함은 이러한 사람들 각자의 열망이 아닐까. 그것은 양반이라 더 한 것도 아니요 상놈이라 없는 것도 아닌 각자의 세상을 향한 열망...
소설 곳곳의 세시 풍속은 읽는 재미를 더하였다.
갑자기 이 책은 어떤 탁월한 번역가도 번역할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작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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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반양장)
전광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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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의 가벼움을 알고 있기에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선물받은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전과 감동을 주었다.
철저히 하나님앞에 머물기를 기뻐했던 링컨...그는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링컨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낸시의 기도와 그의 새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로 가능했던 것 같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꿈을 꾸었던 링컨의 모습은 요셉을 보는 듯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케 한다.

자신의 원수를 친구로 만들 수 있었던 링컨,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장점으로 발전 시킬 수 있었던 링컨,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링컨의 모습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무엇보다 나라가 '노예 해방'문제로 남과 북으로 분열될 지경에서 조급함으로 쉽게 불의와 타협하기보다 공의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그의 리드쉽은 큰 감동과 탁월한 지도자가 없는 이 시대를 안타깝게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그의 탁월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빨리 데려가셨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의 탁월함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도전과 감동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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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몇의 친구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추천해 준 책이다. 그러곤 바로 사 놓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것은 여섯 달이 지난 오늘에서이다. 몇 번이나 손에 들었다가 놓은 이유는 처음 몇 페이지에서 느낀 섬뜩함 때문이었다.

'향수'라는 제목과 어떤 면에서 너무나 어울릴 수 없었던 그 섬뜩한 그르누이의 출생이 선뜻 이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치밀한 사건전개는 그르누이가 냄새를 빨아들이듯 나를 빨아 들였다.

신기한 것은 그르누이는 좀머씨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익숙치 못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늘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또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르누이가 선택한 마지막 자신의 죽음은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음을 알게 되어서, 그 존재 자체로는 결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없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살인자 그르누이가 독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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