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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독후감] 장 코르미에,『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0(1997).
- 인류는 정녕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예수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러 온 장병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고자 한 제자들을 말립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아 죽이는 적들을 위해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소서.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원수를(조차도) 사랑하라’는 테제로 요약되는 예수의 평화 사상은 절대적으로 보입니다.
무폭력 운동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한 간디는 예수의 가르침이 자신의 평화 사상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바 있지요. 하지만 이상적이고 윤리적으로 옳게만 보이는 무폭력주의가 현실에 구현될 때는 균열이 생깁니다. 조지 오웰은 간디의 무폭력 저항이 결국은 ‘영국의 지배를 평화롭게 종식시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성취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즉, 철저한 비폭력 저항은 영국을 위협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를 안착시켰다는 것이지요.
체 게바라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합니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 하지도 않을 겁니다······.” -체 게바라
체는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총을 들어야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해방되고자 하는 민중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무장투쟁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제국주의자들이 총·칼을 앞세워 민중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투쟁 끝에 혁명을 달성한 게릴라 세력은 가장 처참한 착취를 받던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일을 시작으로 개혁을 진척해 나갑니다.
중산층의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명망 있는 직업을 얻은 그가 전사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의사자격시험을 합격한 뒤 나는 아이티와 산토도망고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으로, 나중에는 의사로서, 나는 빈곤과 기야, 질병을 목격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일이 우리 아메리카의 기층민중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현실임을 바라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유명한 학자가 되거나 의학상의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민중을 직접 돕는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총을 든 강인한 전사를 추동했던 힘은 바로 약자를 향한 사랑과 정의였습니다. 게바라의 동지이자, 새로운 쿠바의 지도자였던 피델은 말합니다. “체는 바로 이 대륙을 짓누르는 억압 때문에 죽었습니다. 체는 이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다가 죽었습니다. ······ 체야말로 인간다움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혁명의 극기, 희생정신, 투쟁의지, 혁명적인 노동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예비군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총을 듭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기독교인으로서의 평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추구한 절대적 평화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제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총을 내려놓고 뺨을 내밀 수 있을까요?
분단된 조국에서 병역의 포기는 전쟁을 유발합니다. 체는 “전투란 역시 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 특별히 요청된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별 수 없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지요. 제게 놓여있는 병역의 의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가피하지요.
예수님의 평화 사상은 가히 신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2000년 전에 인류에게 ‘절대 평화’를 ‘명령’했지요. 하지만 인류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원수조차도 사랑으로 품어라는 혁명적 정언명령은 아직 우리에게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진정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국가 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도 “국가는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다”라고 하면서 국가가 존속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았지요. 그렇다면 인류는 세계 국가와 단일법으로 절대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단일한 공동체를 만들어 원수를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평화에 도달하게 될까요? 혹은 원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끌어안는 윤리적 성취로 평화에 도달할까요?
‘원수를 끌어안는 성취를 통해 원수들을 소멸해 가는 것, 그래서 절대평화에 도달하는 것.’ ‘원수가 실은 원수가 아니라, 같은 보편적 인간이라는 자각과, 이를 통한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루는 것.’ 이러한 추상적 테제가 현실에 구현될까요. 칼을 영원히 칼집에 꽂아둘 수 있을까요. 인류는 정녕 절대평화에 도달하게 될까요.